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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y 22. 2022

술 먹다 홧김에 해본 용서

소중한 당신

'아 책임님 집도 멀고, 요즘 바빠 보여서 말씀 안 드렸어요, 어차피 못 오셨죠?'

'아,, 네,,,'


그렇게 나의 단답으로 대화는 끝이 났고, 그와 나 사이에 공기는 서로에 섭섭함으로 가득 찼다. 알 수 없는 실망감과, 자그마한 배신감마저 머리를 들었다. 나도 머리를 들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이성과 앞으로 보일 이미지 때문에 쓴웃음으로 겨우내 참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팀 사람들과 삼삼오오 술자리 번개를 가졌다. 정말 오랜만에 가지는 팀 사람들과 술자리다 보니 어떤 말을 하고, 듣고, 웃어야 할지 설레기도 하더라.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러던 중 한 직장 동료가 나를 보며 농담처럼 물었다.


'책임님은 요즘 왜 술자리를 피하세요? 저희가 싫어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순간 한참에 정적이 흘렀고 다른 동료가 황급히 말을 끊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서두에 언급했던 대화처럼 말이다. 이유인즉슨 내가 집이 멀고, 바빠 보인다는 이유로 나에게 말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어찌 보면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게 말을 해봤지만 싫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저는 처음 듣는 술자리 제안인데요,,, 그리고 바빠 보일 수는 있지만 바쁘지 않았어요~

누가 이런 술자리가 싫다고 하던가요~ 허허허'


말이 끝나고 웃고 싶지 않았지만, 쿨해 보임을 담당하는 감정 회로가 발동되어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누가'라는 것은 거기 있는 모두가 누구를 뜻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누구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으면 싶어, 내가 선택한 단어였으니,,, 그리고는 나의 바람대로, 그 동료를 흘깃흘깃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후 대화는 몇 번에 정적과 해명이 반복하다 다행히 다른 주제로 잘 넘어갔지만 나의 마음은 한동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왜 저 자식이 나를 빼려고 했을까?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그 동료와의 관계나 대화에 대해 혼자 CCTV를 돌려보고 있었으니 정상적인 대화 참여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얼마 후 얼근하게 취했더니, 머릿속 어딘가에서 쿵 하고 어떤 울림이 들리더라. 저런 사람에게 내 감정을 쏟지 말라고 말이다. 그냥 오랜만에 나온 술자리니 모두 잊고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이 사람들에 충실하며 즐기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정곡을 찌른 제안이었고 술잔을 부딪히는 것으로 맞장구를 대신했다. 그리곤 술이 머릿속 소독약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한잔 탁 털어 넣었다.


그 사람이 오해가 있든, 없든, 정말로 내가 싫든 말든 사실 난 아무 상관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이유를 모르니깐 말이다. 굳이 몰라도 될 이유를 알기 위해, 서랍 저 깊숙이 박아둔 어떤 과거를 끄집어내려다 지금에 기억까지 다 끄집어내 구겨 넣어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아무렇지 않기에 술 한잔 털어 넣으며 소탈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다시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 줄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느꼈던  느낌, 감정 한 방울까지 미안함으로 남길 수 있게 말이다.


그가 내 눈치를 보고 있음을 느끼며, 이내 안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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