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n 21. 2022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소중한 당신

 오늘은 아침부터 눈도 뜨기 싫었고, 운전도 하고 싶지 않았다. 걷기도 귀찮았고, 전화받기도, 심지어 밥을 먹는 것조차도 귀찮은 날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있더라.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을 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이 지금에 최선인 양 느껴지는 날 말이다. 우리는 항상 선택과 결정에 기로에 서서는 어느 쪽이든 결정을 해야만 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오롯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삶이라고, 쓰디쓴 술과 같다고 어른들로부터 배워왔었다.


길을 가다 보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가는 길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 아무것도 내지 않으면 게임에서 진 것과 다름없고, 밥이 먹고 싶지 않아서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고 있으면 숟가락으로 얻어맞기도 했다. 멍하다는 것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또는 갑작스러운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얼떨떨할 때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을 일컫는다.


이렇듯 멍하다는 단어 자체에는 게임에서 진다거나, 하면 안 된다라는 식에 의미는 없지만, 우리 삶에는 무언가 하지 않음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깔려 있는 듯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것은 곧 무임, 무능, 무식, 잉여 같은 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 같만 같고, 문제 해결에 대한 실마리가 될만한 선택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삶에는 쉼 보다는 정지라는 것이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휴일이 있고, 잠을 자며 쉼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긴 하지만 진정한 재부팅은 활동을 하기 전과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갑작스럽게 뻗었을 때 과감하게 눌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월과 삶에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 생긴 멍자국을 보면 괜스레 당시에 아픔을 상상하곤 한다. 다시 또 올법한 아픔에 대비라도 하는 듯 잠깐에 정적에 깊은 한숨을 몰아내며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맡겨 본다는 것, 삶에 대한 태도를 다짐이라도 하듯 아랫입술을 깨물여 다시금 힘을 내본다는 것, 바로 이것이 정지가 가진 효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몸이 다쳐 생기는 시퍼런 '멍'이라는 단어와, 잠시 쉬어가는 정지에 시간인 '멍'이라는 단어가 같은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에 생긴 멍은 멍으로 치유되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화 소리와, 웅성거림, 키보드 타자음, 마우스 클릭 소리를 벗 삼아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허공을 응시해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지금에 최선인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를 험담한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