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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Mar 30. 2023

[칼럼] ‘직장 거지배틀’의 전말

누구나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 적어도 중견기업에서 근무하길 꿈꾸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묵묵히 중소기업 한 구석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기업 종사자 중 80%가 중소기업, 8%가 중견기업, 12%가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하니 대부분은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건 현실과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비율이 거꾸로 뒤집힌다는 점이다. 너도나도 '저 초봉 5000인데 기본은 되나요?', '이번 성과급은 몇 백 퍼센트 예상합니다'와 같은 자랑글이 넘쳐난다.

물론 자랑할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쓸 테니 그런 글들만 보이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입 다물고 소리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나만 이렇게 월급이 작은 건가?' 하며 말이다.


그러던 중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대결을 발견했다. 속칭 '직장 거지배틀'이다. 서로 '자기 직장이 더 거지 같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자조 배틀을 벌인 것이다.

"우리 회사는 믹스커피를 마실 때 장부에 이름을 적어 놓으면 사장이 일일이 수량을 확인해요",  "저희는 오전 시간에는 전등을 끄고 근무한다니까요", "이 회사는 다 쓴 수정테이프통이나 휴지심을 보여줘야 새 걸 받을 수 있어요" 등 쓴웃음 짓게 하는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해당 회사들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겠지만, '회사'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에 비해 너무 사소한 것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들 쉬쉬하고 있었지만 비슷한 직장생활 속에서 다르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며 일하고 있었다.

만약 위 사례에 속하지 않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블랙기업은 안 가면 되지 않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최대한 안 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국내 기업 중 99.8%가 중소기업, 0.12%가 중견기업, 나머지 0.08%가 대기업이라는 점을 미루어 보면, 아주 남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들은 왜 직원들에게 '구차한' 통제를 가하는 걸까? 회사가 정말 어려워서일까?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사장의 직원들에 대한 불신'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운영이 어렵던 어느 회사가, 믹스커피·전등·수정테이프·두루마리휴지를 절약한 덕분에 사정이 크게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중소기업 사장들을 보면 '직원들이 일은 별로 안 하고 놀고먹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너무 잘 대해주면 기어오른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매달 일정한 급여를 준다고 해서, 직원들이 알아서 일을 하고 사장에게도 충직하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물론 사장 입장에서는 자기돈 같은 회삿돈에서 매달 몇 천 만원씩 떼어 주는 것이니, 직원들이 알아서 따라주지 않으면 왠지 모를 아까운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회사라고 한들 1인 기업이 아닌 이상, 회사 매출의 공이 전적으로 사장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에게도 일정한 기여도가 있고, 그렇기에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는 대원칙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만약 직원들이 근무태만을 보이고 사장의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회사의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작정 직원들을 나무라기 앞서, ‘직원들이 일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중 사장이 관심을 가지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거의 없다.


직원들의 근무태만은 명백한 인사평가와 보고기반의 업무체계로 바로잡아 가면 되고, 왠지 모르게 기어오르는 듯한 태도는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여 근로의욕 고취로 풀어갈 수 있다.


오히려 회사에 가장 해로운 직원은 생각도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무생물 직원이다.


만약 회사의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유발하는 직원이 있다면 과감히 내보내면 된다. 필자는 성과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모인 구성원들이, ‘단순한 편견으로 갈등 빚는 것은 소모적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직원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어쩌면 구차하게도 보일 수 있는 '생활적 제약'을 가하는 것은 ‘근로의욕 상실’과 ‘업무능률 저하’를 초래할 뿐이다.


일을 시키려고 뽑은 직원이 업무 외적인 제약으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심각한 손해다.

'어차피 다 똑같은 놈들이니 최소한의 임금·복지로, 정해진 근무시간만 통제하면 기본은 하겠지'라는 생각은 무책임하다. 근로자를 옥죄고 감시·감독하여 업무능률을 끌어올리는 시대는 진작 끝이 났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수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고, 배울 만큼 배운 직원들에게 더 이상 무자비한 채찍질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일하고 싶은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껏 고집해 왔던 기업문화를 돌이켜보며, 직원들을 '자발적 인격체'로 존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채찍이 아닌 '당근'으로 말이다.

아울러 어느 사업 분야에서든 '혁신'을 중요시하는 시대적 경향을 감안해 보면, 오랫동안 회사를 운영한 50-60대 사장에 비해 20-40대 근로자들이 잘할 수밖에 없는 분야도 많다.


예를 들어 인터넷 밈 등을 활용한 온라인 마케팅, 온라인 판매시장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스마트스토어 운영 등은 당장의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에는 해당 분야에서 쌓아온 오랜 경험과 지식만으로도, 연로한 사장이 젊은 직원을 업무적으로 완전히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에도, 그간 회사를 유지해 온 동력만을 고집하며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따라서 사장 혼자 힘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모색하고 제안하며 실행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해당 업무는 젊은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차피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그래서 좋은 법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업무의 재량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일정한 유인을 제공한다면, 해당 직원들의 업무능률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세계적인 OTT기업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혁신은 인재들에게 적절한 맥락을 제시하고 자유를 주면 일어나기 마련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어려워하는 '혁신'이니 '창의성'이니 하는 것들이, 그저 '신뢰'와 '자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도 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일자리 미스매치·2030 구직포기자·중소기업 인력난 같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일각에서는 취업준비생·근로자들이 배가 불렀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의 눈높이가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SNS 등을 조금만 돌아다녀 봐도, 좋은 회사의 자랑할 만한 복지·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현실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근로자들을 대하는 대다수의 기업문화가, ‘너무 오래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점 또한 한 번쯤은 자성해 볼 만하다. 시대는 흘러가고 트렌드는 변화해 가고 근로자들은 젊어지니 말이다.


 이처럼 노사 간의 합의점 혹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 69시간 근무제' 논의가 터져 나왔으니, 정책을 발의한 입장뿐 아니라 정책을 받아들이는 입장 내에서도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정부에서 준비되지 않은 정책으로, 또 하나의 갈등을 부추긴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점차 논의를 더해가며 상호 간의 입장 차를 줄여나가, 언젠가는 ‘일하고 싶은 근로문화’를 형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위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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