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연말이 다가오면서 올해의 계약 건들이 하나둘 마무리되고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일들이 약간의 빈틈을 허락하니 다행히 이렇게 한숨을 돌리고 있달까.
이런 시기에는 흘러간 한 해를 추억하며 잔뜩 수다를 떨어야겠지만, 올해를 되돌아보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래도 요즘 배우고 있는 것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조금은 놓인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
오늘은 최근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나 가져왔어. 2013년도에 나온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야.
요즘 참 많이 고민했던 주제의 '제목'과 비교적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유시민'이라는 사람에게 이끌려 10년이나 지난 책을 읽게 됐어. 이런 종류의 책을 10년 뒤에 읽는 건 나한테 무척 드문 일인데 말이야.
정치인 유시민에게는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작가 유시민에게는 지성과 이성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가진 ‘인생의 선배’ 같은 느낌이 있어서, 평소에도 '이런 어른이 되어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
이 책은 직업, 인생관, 정치, 사랑, 가족, 자녀교육 등 다양한 주제로 쓰인 짧은 글들이 잔뜩 엮어 있어. 오늘은 그중에서도 삶과 사랑, 가족과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해볼까 해.
은하와 행성의 생애 주기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삶과 하루살이의 삶은 양적인 차이가 없다. 둘 다 찰나의 시간을 살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하루살이는 그것을 모른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함이다.
삶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그것을 모르는 삶은 그저 조금 더 길기만 할 뿐 하루살이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나란히 놓는 건 나도 좋아하는 비유야. 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에, 그 시간의 가치는 스스로 잘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을 꼭 찾아가야 하는 거지.
작가는 자신의 행복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가치로 사랑, 놀이, 연대 3가지를 꼽고 있어. 마침 나도 사랑, 자유, 연대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던 참이라 은근히 비슷한 점이 많다 싶었어.
작가는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고, 낚시와 글쓰기를 즐기고, 연대의 수단으로 정치를 선택했어.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여가를 즐기고 연대하는 모습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져서 와닿는 면이 많아.
하지만 난 아직 사랑, 자유, 연대 중 어느 하나에도 이렇다 할 진척이 없어서 약간 힘이 빠진달까.
특히 연대에 대해서 신경을 못 쓰고 있어. 그린피스에 매달 후원하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정도가 전부야.
언젠간 깊이를 갖춘 사람이 돼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고,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운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삶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산다. 부모, 형제, 자식, 연인, 아내, 남편, 친구, 동지, 직장 동료를 사랑한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 이름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풀 한 포기 키우지 못하는 황무지나 마찬가지다.
사랑은 움직인다. 새로 생기고 변덕을 부리며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속인다.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저 사랑한다고 착각할 뿐인지 확실하지 않다.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색깔과 맛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사랑은 '싹 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무엇을 꼭 해주고 싶은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싶다는 그 생각과 느낌을 마음에 새기자. 영원한 이별의 상상이 가슴 찢어지게 아린 맛을 주는 그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대로를 하라. 그것이 좋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맞아.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 그래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고 있다'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해.
사랑 본연의 달콤함은 보이지도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와 닮은 감정과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는 거지만 말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이 우리에게 바닥 없는 불안을 주는 것도 사실이야.
그럼에도 작가는 '내가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꽤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어. '싹 난 감자처럼 아린 맛'이라는 비유를 사용해서 말이지. 정말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해.
싹이 난 감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 푸르딩딩한 아림이 어떤 느낌인지 금방 알 것 같지 않아?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생각했을 때 그 아림이 느껴진다면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거래.
그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싶은지'를 잘 새겨뒀다가 다음에 만났을 때 꼭 표현해 준다면 그게 바로 좋은 사랑의 표현이라니. 꽤 쉬워 보이는 듯하면서도 막상 만만할 것 같진 않지?
철없는 누군가에게, 그나마 조금 남은 철마저 완전히 사라질 만큼 치열하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과연 어떤 걸까. 조금 과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손끝만 스쳐도 마음이 설레고 입맞춤만으로도 황홀감에 빠지는 연애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한 이불을 덮고 같은 욕실을 쓰고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다 알고 나면 설렘과 황홀감이 있던 자리를 편안함과 친숙함이 차지한다. 연인은 사라지고 남편 또는 아내라는 가족이 생기는 것이다.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 의식으로 맺어진 어른과 아이들의 생활 공동체’이다. 연인과 가족의 차이는 하나뿐이다.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는 생활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그 배우자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적 욕구와 교감이 기초가 된다.
성욕이 사라지지 않은 한, 아내와 남편은 일반적으로 서로에게 여자이고 남자이다. 부부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으며 성장기의 공통적인 경험도 없다. 헤어지면 바로 남이 된다. 부부 사이의 책임의식과 유대감은 사랑 위에서만 튼튼하게 유지된다. 사랑이 없어지면 조만간 책임감도 약해진다.
누군가와 가족을 이룬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일 거 같아. '가족'이라는 뚜렷한 테두리 속에서 나 아닌 사람들과 매일같이 함께 살아가는 건 솔직히 부러운 일이야.
특히 내가 일군 가족은 나와 상대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어 갈 수 있잖아? 그건 정말 즐거운 일일 것 같아.
물론,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쉽진 않겠지만 말이야. 그만큼 선택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테니까.
작가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소중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가치로 '책임'에만 무게를 싣지 않고 있어. 연인에서 가족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이 중요하다는 거야.
이 부분이 내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야. 작가는 나보다 한 세대 전을 살았던 사람인데도 생각이 열려 있어.
작가는 약점이 없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앞세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현실적인 인간상에서 시작해서 논리를 풀어나가는 게 참 용감하다고 생각해.
이상적인 인간상에는 틀린 점이 없지만 괜히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잖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꽤 신중하게 선택해서 이룬 가족을 유지하는 걸 상당히 버거워하는 것 같아. 죽지 못해 사는 경우를 자라면서 많이 봐왔고, 주위에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야. 아마도 내가 가족을 이루는 걸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 일 거야.
그럼에도, 마음을 나눈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픈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크다고 생각해.
만약 연인으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릴 경우 상대방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게 될 위험이 있다. 혼인이 깨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불행은 아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 진짜 불행이다. 파경은 이미 생긴 불행을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없는 혼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헤어지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일 수 있다.
결혼은 구애의 종착점이 아니다. 혼인한 이후에도 배우자에게 이성으로서 매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정한 말과 이벤트로 계속 점수를 따야 한다. 손잡기와 입맞춤, 팔베개와 같은 소소한 구애 행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생활이 고달프고 일이 바쁘고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남편 또는 아내를 연인으로 여기면서 배우자가 다른 여자 또는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사로잡아야 한다.
구애는 단순한 짝짓기 수단을 넘어 소통과 공감의 기쁨을 만드는 행위이다. 구애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 말고는 사랑의 감정을 인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결혼을 한 뒤에도 서로에 대한 구애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어.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준 '사랑'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야. 결혼 생활이 깨지는 것보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게 진짜 불행이라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어.
공공연히 이름이 알려진 작가라면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책임’이니 어떻게든 잘들 이겨내세요'라는 말을 하는 게 어쩌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거잖아? 근데 작가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
작가처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어. 솔직함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당연한 가치에 '용기'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싶겠지만 말이야. 어쩌면 그런 세상이 더 바람직하고 좋은 세상인지도 모르겠어.
최근 들어 솔직함이 가진 약점에 대해서도, 솔직함만이 가진 강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가족에 대한 내용은 ‘싹 난 감자의 아림’보다 조금 더 따가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굳이 가져온 건 솔직하고 싶은 아주 작은 용기 중에 하나로 봐주면 좋겠어.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성장하는 법이잖아?
우리는 자식을 아끼고 보호하며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주면서 기쁨을 느낀다. 누구보다도 먼저 딸 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무엇이든 주는 것이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일까? 그렇지 않다. 사랑을 잘못 표현하면 자식의 삶을 망칠 수 있다. 부모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잘못은 자녀의 삶을 대신 설계하고 자녀의 행복을 대신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는 누구나 딸 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자녀에게 행복을 상속해 줄 수는 없다. 행복은 저마다 느끼는 주관적 만족감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가 옳다고 믿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어로만 소통하는 존재가 아니지만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언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을 하기 전에 아이들은 먼저 말을 알아듣는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말과 더불어 진행된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한다. 부모가 반쪽짜리 말을 쓰면 아이의 생각도 반쪽짜리가 된다.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믿고 격려하면서 어려움을 처했을 때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최대한 표현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어.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의 리스트에는 자신 있지만,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거든. 괜히 떠들다간 뜬 구름 잡는 소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서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대신하려고 해. 오래전부터 작가가 '자녀교육만큼은 정말 제대로 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해왔거든.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 생각을 하게 됐어.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점도 많아.
앞으로는 이 공간에서, 너와 나누고픈 여러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 주제는 책이 될 수도, 공연이 될 수도, 전시가 될 수도, 여행지가 될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읽는 동안만큼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널 위한 매거진이니 말이야.
한 달에 한 번만 찾아와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