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본연의 일기를 쓰려 한다.
최근 월간지 만드는 일을 하면서 나의 일상은 달 주기로 맞추어졌다. 이제 막 여섯 권의 책을 낸 참이지만, 앞으로 수십 번은 이 비슷한 순환을 빙글빙글 돌 터다. 월초가 되면 새로운 기획을 하고, 중순이 되면 마감에 쫓기고, 월말이 되면 발행을 하며 한숨 돌리는 삶. 어쩌면 내가 꿈꾸었던 행복과도 얼핏 닮아 있다. 물론, 여기에 안주해 있을 생각은 없지만.
원하는 기획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와 질리도록 글을 쓸 수 있는 환경과 다달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오는 뿌듯함이 공존하는 이 삶에 당장은 한 치의 불만도 없다. 뭐, 정신없이 휘둘리는 거야 어느 일이 그렇지 않으랴.
다만, 언젠가 이 낯섦이 사라지고 나를 추동하는 이 순환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순간에는, 또다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겠지만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다. 그때의 내 손엔 지금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무기가 쥐여 있을 거라 믿는다.
어찌 됐든, 이제야 예전의 내가 마땅히 향유하던 일상에 다시 눈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밀린 빨랫감처럼 할 일 투성이다. 브런치에 글도 써야 하고, 한동안 놓았던 소설도 다듬어야 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매일 운동도 해야 한다. 내버려 두었던 나를 다시 돌보아야 할 때다. 목표했던 바를 향해 한 계단을 올라섰을 뿐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천릿길이다. 피카츄를 데리고 태초마을에서 벗어난 지우 신세다.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닥쳐 오겠지.
그럼에도 한시라도 서둘러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급해서 일을 그르치기엔 꽤 나이를 먹어 버렸다. 한 걸음씩 발자국을 꾹꾹 눌러 찍어 가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나아갈 예정이다. 일생의 과업으로 정한 이상 쫓길 일은 없다. 나를 괴롭히는 건 마감일 하나만으로 족하다. 이번 생은 이렇게 살아가기로 진작에 마음먹어버렸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불안 반 설렘 반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 비율이 딱 좋다. 너무 불안해서 설렘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도 싫고, 너무 설레어서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싫다. 이 비율만큼은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잘 나아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삼고 싶다. 삶의 나침반쯤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런 편리한 물건이 존재할 리는 없겠지만.
그런 기분이고, 그런 마음이라, 이런 글을 남긴다. 나의 무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