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비소설 코너에 보면, 정작 별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꾸준히 매대에 있는 책들이 있다.
순간 제목에 혹해서 열어보더라도, 대부분이 금세 '아, 이거 그거잖아. 잔소리' 하면서 덮을 책이다.
그 책들은 대체로 '아들아~', '딸아~'로 시작해서 '~하여라', '~되어라' 등의 당위로 끝난다.
부모가 되면 참 자식들에게 할 말이 많아지나 보다. 그게 정작 자기 자식에게 도움이 될지의 여부는 차치해두더라도 말이다. 뭐, 이것도 일종의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면 자유겠지만, 가끔은 듣는 쪽의 입장도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앞서 언급한 책들을 고등학교 시절에 즐겨 읽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던 시기에, 주변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했던 많은 말들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들여 서점에서 직접 보고 산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엄마 친구나 어른들이 책 선물이랍시고 비슷한 책들은 선물했을 때에는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버렸다.
아마도 당시에는 다분 불순한 의도가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처럼 삐뚤어진 아이들도 많으니, 이런 선물을 할 때에는 조금은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러한 선물을 했을 때 가장 기뻐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다. 처음부터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는 목적이었다면 그다지 망설일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물하고자 하는 어른이 직접 읽고, 아이의 상황에 맞게끔 쉽게 편지로 써주는 것이겠지만, 이건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게 아니다. 아이의 고민에 어떻게 공감할 것이며, 부모가 아니라면 아이와 나와의 거리도 생각해야 한다. 쉽지 않은 만큼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또 막상 그렇지 않다.
내가 보낸 따뜻한 조언의 말을 아이는 충분히 그저 그런 소리로 들어 넘길 수 있다. 아이는 그래서 아이인 거니까.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보자. 서로 잘 맞다면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기억이 될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벗어난 이후로는 이러한 글들을 잘 읽지 않았다. 그럴 때가 지나기도 했지만, 어른 위주의 서사에 이상하게도 공감이 잘되지 않았다. 정작 고등학생 때는 잘도 읽었으면서 말이다. 독자의 상황이 감정이입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찌 됐든, 좋아하는 시 중에 어른의 조언을 편지 형식으로 잘 녹여낸 작품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전하고자 하는 바도 부드럽게 잘 썼지만, 무엇보다 읽는 이에게 향한 커다란 애정이 느껴져 마음에 남았다.
서영아, 「딸에게 미리 쓰는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
얘야,
그냥 사랑이란다
사랑은 원래 달고 쓰라리고 떨리고 화끈거리는
봄밤의 꿈같은 것
그냥 인정해 버려라
그 사랑이 피었다가 지금 지고 있다고
그 사람의 눈빛,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몸짓
찬란한 의미를 걸어 두었던 너의 붉고 상기된 얼굴
이제 문득 그 손을 놓아야 할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
봄밤의 꽃잎이 흩날리듯
사랑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데
니 마음은 길을 잃겠지
그냥 떨어지는 꽃잎을 맞고 서 있거라
별 수 없단다
소나기처럼 꽃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삼일쯤은 밥을 삼킬 수도 없겠지
웃어도 눈물이 배어 나오겠지
세상의 모든 거리, 세상의 모든 음식,
세상의 모든 단어가
그 사람과 이어지겠지
하지만 얘야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야 비로소 풍경이 된단다
그곳에서 니가 걸어 나올 수가 있단다
시간의 힘을 빌리고 나면
사랑한 날의, 이별한 날의 풍경만 떠오르겠지
사람은 그립지 않고
그날의 하늘과 그날의 공기, 그날의 꽃향기만
니 가슴에 남을 거야
그러니 사랑한 만큼 남김없이 아파해라
그게 사랑에 대한 예의란다
비겁하게 피하지 마라
사랑했음에 변명을 만들지 마라
그냥 한 시절이 가고, 너는 또 한시절을 맞을 뿐
사랑했음에 순수했으니
너는 아름답고 너는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