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Mar 08. 2020

나는 나와 애증관계에 있다

망할 년이어도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참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한 번 보고 잊힐 인연부터 친구, 연인, 스승과 가족까지. 작별하고 싶지 않아도 그들과 영원히 교제할 순 없다. 반대로 탄생부터 임종까지 원하든 원치 않든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나’다. 솔직히 얘가 평생 동안 교제할 만큼 잘생기고 예쁘며, 멋있고 상큼한 면이 있어서 사귀는 건 아니다. 지금 교제 중인 사람은 장점만큼 확실히 단점도 넘친다. 성깔이 더러운데 오지게 게으르고, 가끔은 물 먹은 종이처럼 축 쳐져서 쉽게 으개질만큼 약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내게 남들은 자신의 모든 면을 사랑하라 말했다. 그러면 강해질 것이라고. 나도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게 뭔데. 그거 뭐 어떻게 하는 건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건, 뱉기는 쉽지만 주워 담기 어려운 말이다. 아직도 내 단점과 수치스러운 과거는 밤마다 나를 이불 킥하게 만들고, 굳건한 의지와 다르게 몸뚱이가 따로 노는 날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도저히 나는 내 모든 면을 애정 할 자신이 없다. 그들 말처럼 '긍정적인 자기애'만 자존감을 만들 수 있다면 이미 한참 전에 그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난, 나를 존중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누가 엄마를 해친다면 난 당연히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나도 나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나와 머리 뜯고 싸우다가도 남이 나를 헐뜯는다면 두 명의 나는, 모두 그놈의 머리채를 잡을 거다. 감출 수 없는 단점에 스스로를 망할 년이라고 욕할 때조차도, 진짜 망하길 바란 적은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애정 할수록 스스로에게 큰 기대를 갖고 또, 기대와 다른 실제 모습에 실망을 한다. 자기애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애가 넘치기에 내 모든 단점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할수록 미워하는 역설 속에 살게 된다.



 물론 강박적인 자기혐오는 분명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오점 하나 없이 완벽한 사람이 현실에 존재할까? 그것은 사람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연애와 현실의 연애가 서로 다르듯, 나도 나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단점들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조금, 너그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내 모든 면을 ‘애정’하진 못하더라도 때때로 미우며 이따금 사랑스러운 나를 ‘애증’하기라도 한다면, 그것도 ‘Love myself’. 자신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테니까.






글쓴이의 말

입이 마르고 닳도록 무쌍에 키 큰 사람을 외치던 친구가 데려온 애인이 정반대의 스타일이었을 때, 나는 '너 키 큰 무쌍이 좋다며?'라고 물었다. 그때 친구가 무어라 했냐면.


 "분명 내 취향은 아닌데 귀여워. 그래서 출구가 없어."


 맞다. 귀여운 건 답이 없지. 나도 나를 보며 '내 취향은 아닌데 귀여워.'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걔 늦잠 자는 모습이 귀여워. 게을러서 미적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성격이 불같고 더러워서 귀여워. ……아니야. 아직은 덜 귀여워.



▼ SNS로 더 자주, 가깝게 만나보아요!

유달리의 인스타그램

유달리의 트위터


▼ 제가 쓴 <나다운 건 내가 정한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여기를 클릭 시 구매 링크로 이동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는 봐야만 하는 피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