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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an 03. 2019

아, 오늘은 글렀어

쉬면서도 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연말에는 신년을 맞이할 몸을 편히 쉬게 하면서, 운동과 책을 읽으며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종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뜻한 온돌에 몸을 비비며 누웠다가 생각한다.


 '아침에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지금 가기에는 너무 늦었지?'


 열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고개만 들어 보고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바보, 일찍 일어나서 설쳤으면 진작 운동을 끝냈을 시간인데 게을러서 너무 늦었어. 지금 나가면 분명 3시가 넘어서나 집에 올 거야.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방 저녁시간이 되겠지. 오늘은 너무 늦었어, 하루를 날렸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쥐어박고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부어버린 부침개 반죽처럼 눅눅하게 바닥에서 착 붙어서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잘 쉬기라도 하면 될 텐데, 계획대로 쉬지 못한 것에 무한한 자책을 한다. 그렇게 쉬는 것 하나도 부지런히 하지 못했다는 것에 하루를 망친 죄책감을 느끼며 감정이 지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모습을 만약 내일의 내가 본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야이 등신아.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던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던지 하나만 해.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뭐 하는 거야. 너 때문에 내일 내가 얼마나 지치는 줄 알아?"






 당신은 혹시 하루의 계획을 '몇 시에 기상할 것인지'부터 정하는 사람인가?

 보통 계획을 세운다고 하면 동그란 원에 파이를 여러 조각 나누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취침, 언제 꼭 기상한다, 공부 혹은 일은 몇 시부터 한다' 등등 24시간을 산산이 쪼개버린다. 그러고 다음 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일어나면 좋겠지만, 자칫 내가 정한 규칙에 어긋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위와 같은 모습은 의외로 인생을 대충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많이 보이는 면모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뭘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일을 한없이 뒤로 미룬다. 그런데 이미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내가 수행하는 완벽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괴롭다. 대게는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 계획을 시작부터 망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완벽한 하루를 살았어야 했다는 강박인지, '몇 시에 기상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어기면 역적죄인 것처럼 쪼그라들게 된다. 그렇다고 뭘 딱히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 날은 쉴 거면서 그냥 1분 1초를 갉아먹으며 계속 자신을 어둡고 깊은 구덩이에 가둔다.


 우리는 살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럭저럭 평범한 하루를 보내게 되면 ―혹은 어제보다 모자란 하루를 보내게 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산 사람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불안해진다. 저 문구는 잘못됐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계속 살다 보면 생의 마지막 날까지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며 불안에 떨다 죽게 될지 모른다. 사람은 알람을 맞춰놓은 기계가 아니라 '근육'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이 없이는 살 수 없다. 근육은 손상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몸에 자리 잡게 되고, 매일 운동하는 것보다 휴식이 들어간 일정한 루틴을 반복하며 자극시킬 때 더 단단해진다. 뇌와 신체, 마음 또한 이런 근육과 같다. 열심히 노력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는 자기의 패턴에 따라 쉬는 시간을 추가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성장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계속' 반복할 순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쉬어야 한다.





  우리에게 '몸을 쉬게 하는 방법'은 익숙하다. 몸은 지치면 바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몸살이든 감기든 어떠한 형태로든 나를 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한다. 푹 자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회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마음을 쉬게 한다'는 것은 참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 마음이 쉬어야 하는 상태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음은 몸과 달리 전초 증상이 거의 없어서 괜찮은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한 번에 '펑!'하고 터져버린다. 그래서 사실 신체의 피로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마음의 피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주기적으로 쉬어야 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마음이 쉬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을 버리면 된다. 다들 이런 경험 한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공부가 정말 꼴도 보기 싫어서 제쳐두고 게임이나 좋아하는 영화 보는 것을 질릴 때까지 했더니, 갑자기 '아 오늘은 공부 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아이러니한 경험. 게임이나 좋아하는 영화에 '몰입'하는 동안, 공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쉬게 되고 불안한 마음이 해소된다. 그러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왠지 새롭다! 마음이 쉬었기 때문에 일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된 것이다. 몸이 쉬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라도 일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일을 할 수 없는 하루라면 남겨진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자. 일은 생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건 나를 더 고문하는 것이다.


 당신의 평생 중 그른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오늘의 당신이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그 하루는 가치 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말자.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대충 보내는 하루도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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