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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08. 2019

성공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라

위대한 인물을 따라가면 성공한 인생이 나오는가?


 성공한 인생은 어떤 걸까? 왜 철학적 사유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는 현자들은 속 시원한 해답을 내려주지 않았을까. 오래 산 사람에게 물어도 똑같다. 자기 삶을 토대로 조언은 해주는데, 썩 명쾌한 답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성공한 삶인지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닐까. 굳이 아는 존재를 꼽자면 하늘 위에서 인세를 조망하는 신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데 신은 정말 알고 있는가? 30억 년 분량의 장편소설 "세상만사"의 지은이가 신이라면, 등장인물인 '인간'은 이미 신의 손을 벗어난 변덕스러운 캐릭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등장인물을 만든 것은 물론 작자지만, 참된 의미에서 살아있는 등장인물은 어느 시점부터 작자의 손을 떠나 자립적으로 움직입니다.


 신이라는 작가가 설정해놓은 등장인물이 인간이라면, 이 캐릭터의 설정 값은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났다. 인간이라는 캐릭터는 혼자 사색을 하고 제 의지로 결단을 한다. 심지어 생을 거쳐 성격을 만들어놨더니 변덕이 심해 손바닥 뒤집듯 다른 사람이 된다. 하나의 캐릭터를 만든 것은 조물주라 하여도, 어느 시점부터는 캐릭터가 메소드 연기를 시작한다. 결국 세상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신의 회심작인 "세상만사"는 30억 갈래로 넘게 찢겨 낱장의 단편소설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다른 등장인물의 삶을 훔쳐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 설정 값이 완벽히 일치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똑같이 카피해도 다른 엔딩이 나온다. 그럼 모두의 엔딩이 다르다면 과연 오리지널 엔딩과 배드 엔딩은 누가 규정하는가.








 우리가 집에 있는 재료로 '무화과 로스트 포크'를 만들어 한 끼를 해결한다고 생각해본다. 일단 냉장고를 열어 레시피를 확인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우리 집에 치아바타가 없는데? 펜넬도 없고, 셜롯은 뭔데? 후하게 쳐서 냉장고에 다진 마늘과 파가 있다고 해도, 나는 따로 허브를 키우지도 않으며 심지어 오븐도 없다. 결국 죽었다 깨어나도 똑같은 음식은 할 수가 없다. 재료가 다 있어도 그렇다. 어른들이 말하는 손맛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건지, 아무리 정량으로 해도 사람 손을 거치면 맛이 다 다르다.


 그런데 레시피를 버리고 맛있는 한 끼를 만든다면 간단하다. 냉장고를 열어 있는 재료로 맛있게 먹을만한 걸 만들면 된다. 누가 맛있게 먹느냐. 내 입으로 들어가니, 결국 나다. 그게 계란 프라이와 밥 한술이 됐든, 김치찌개가 됐든, 가자미 찜이든, 신선로가 됐든 있는 재료로 내가 먹을 걸 만들면 된다. 사람마다 냉장고 속 재료가 다 다르기 때에 완성된 요리도, 성공의 정의도 다르다. 또, 내 식탁에는 고든 램지도 미슐랭 가이드 평가원도 오지 않는다. 내 입맛에만 맛있으면 된다.


 평론가에게 최고의 호평을 받은 음식도 내 입에는 심심할 수 있고, 최악의 혹평을 받은 음식도 나에겐 소울푸드일 수 있다. 결국 판단 기준은 내 입맛이며, 나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도 옳다. 성공을 정의하는 것은 부모나 철학자도, 유명 작가와 신도, 뛰어난 셰프나 평론가도 아닌 나다. 그렇기에 수많은 선인들이 인생에 절대적인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입맛은 다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잘난 남들이 네 음식에 썩은 맛이 난다고 해도, 내 입맛에 맞는 삶은 성공이며 최고의 엔딩이고, 결국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된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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