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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4. 2019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

사람인데 아플 수도 있죠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린다. 보통은 한 일주일 앓다가 괜찮아지는데, 그 해는 좀 심했다. 주변 환경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밤새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열중한 탓에, 눈까지 잘 뜨이지 않고 시렸다. 열나는 거야 견딜 수 있지만, 앞이 안 보이면 일을 못했다. 그래서 바로 안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컴퓨터를 멀리하고 8시간 이상 자라는데, 그러면 돈을 못 번다고 말하고 싶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들이 줄줄이 이어져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끙끙댔다. 그러다 보니, 제때 약만 먹었으면 나을 감기로, 나는 응급실을 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하신 거예요."


 무얼 했냐면, 회피를 했어요. 나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몸에 잔뜩 두드러기가 오르고, 열병으로 비틀거릴 때쯤 의사를 찾았다. 그냥 감기는 왠지 내가 나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번 계절마다 앓았던 거니까. 의사는 나를 미련하다는 듯 쳐다봤다. 나도 할 말은 많았다. 의사 선생님, 공교롭지만 감기로 일을 빼주진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관리 못한 나약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던데요? 할 말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프면 병원에 와야 합니다."

 "네에."

 "안 나으면 계속 환자예요. 나아야 건강해지고요."


 알아요. 다 알아요. 그런데 나 사실, 요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인생의 노잼 시기가 왔나 봐요. 내가 나랑 권태기가 온 것처럼 낯설고, 원래 이렇게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인가 싶어요. 그래도 주변에는 노력하고 있어요. 내 상태가 태도가 되지 않게. 누가 그러던데, 삶은 아주 오래 고통스러웠다가, 잠깐 행복한 거래요. 그런데 그거, 나만 그런가 봐요. 세상 사람들, 나 말고 다 건강해 보여요. 나도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일까요. 감기 걸리지 않은 사람처럼,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말이에요.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아프면 운동을 하는 게 어때?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아플 시간도 없던데, 넌 왜 그래? 내 생각에는 네가 바쁘지 않아서 아픈 거 같아. 그리고는 오만가지 민간요법을 말해주더라고요. 선생님은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드셔 보셨어요? 작년에 누가 그러면 감기가 낫는 데서 해봤는데, 다음날 정말 몸이 개운해졌어요. 그래서 저번 주도 그렇게 했거든요. 그랬는데, 더 아프더라고요. 이것도 면역인가 봐요. 나는 주절주절 응어리 치던 설움을 토해내듯,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우연이예요. 우연히 나은 겁니다."

 "그렇지만 진짜 나았는데."

 "술 마시면 더 안 좋아져요. 충분히 쉬다가, 그래도 안 되면 병원에 왔어야죠."

 "무슨 감기로 병원까지 와요. 유난스럽게."

 "환자분 같은 경우에 감기가 오래되면 임파선염으로 가요. 그래서 목이 붓는 겁니다. 열도 나고요. 눈도 안 좋아질 수 있고, 심하면 기억력도 감퇴될 수 있어요."

 "그런데 저, 왜 계절마다 감기에 걸리는 걸까요? 혹시 저만 유독 몸이 약한 걸까요."

 "무릎이 다치고 나서, 비 오는 날마다 욱신거린다는 사람들 있죠? 그런 거죠. 다 똑같습니다. 남들이랑 비교하지 말고, 병원에 올 때만큼은 달리 씨만 생각하세요. 달리 씨를 위한 시간입니다."


 나는 나만 특히 약한 줄 알았다. 그리고 약한 건,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렇다며, 나쁘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 저렇게 아픈 사람은 유별나게 몸이 약해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아니다, 그 사람은 잘못이 없었다. 오히려, 아픔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악했다. 누구든 그런 악한 사람에게 상처 받고, 약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하고 악한 건 우리가 아니니까.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 더 괜찮아지면 된다. 내일이 힘들면 그다음 날, 아니면 일주일, 한 달, 얼마가 걸리든 그저, 아픈 것은 나으면 된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혼자 앓을 때보다는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약을 먹고 푹 쉬면 더 좋아지겠지. 오기까지 참 무서웠는데, 그래도 오길 잘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꾸벅 인사한 뒤, 다음에 올 날짜를 정했다. 그렇게 문 밖을 나가려는데, 의사 선생님이 날 불렀다.


 "달리 씨,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

 "다른 사람들도 종종 우울해집니다. 숨길 필요는 없어요."


 마음에도 면역력이 떨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 말을 끝으로 다음에 보자는 선생님께 나는 꾸벅 목례만 하고 나왔다. 따뜻한 병원 안을 나서자 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듯 세차게 불어왔다. 한껏 몸을 움츠린 채 생각했다. 올 우울증은 참 유난이다. 아니다. 유난이 아니지.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하잖아. 결국, 그해의 감기 같던 우울증도 지나갔다. 언제 다시 감기가 올진 모르지만, 어쨌든 이건 안다. 우리의 껍데기와 알맹이는 언제든지 아플 수 있다. 아픈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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