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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6. 2019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중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난제에는 분명 함정이 있다


 한 때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는 걸 꿈꿨다. 어떤 전시를 보았다가, 그 작가의 그림과 일생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낭만적여 보이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작가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맥 두 대와 신티크가 있는 넓은 작업실, 벽면은 온갖 힙한 아이템들이 가득하고, 유명한 잡지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턱을 만지며, 45도 고개를 들고 찍은 흑백사진이 실린 삶. 그리고 그의 인터뷰는 이랬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졸라 멋있다. 이렇게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낭만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나도 그림 그리는 건 예전부터 좋아했으니까, 이 사람처럼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인내와 고난의 가시밭길 끝에 성공이 기다릴 것이다. 나는 그때, 축배를 들면서 이 사람처럼 말해야지.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결국에는 성공할 것입니다. 자, 여기서 질문. 나는 과연 그림이 그리고 싶었을까, 아니면 성공이 하고 싶었던 걸까?





     



 여기 인류 최대의 난제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는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는가?


 사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함정은 있다. 답을 찾기에 앞서, 우선 이것부터 생각해보자. 나는 하고 싶은 일로 '성공'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야 한다. 대부분 꿈을 물어보면 이런 경우가 많았다. ( 그림 )으로 성공하기, ( 의사 )가 돼서 부자 되기, ( 크리에이터 )로 유명해지기. 그런데, 이건 사실 괄호 안의 것보다는 '성공, 부자, 유명세'를 얻고 싶은 게 아닐까? 과장을 좀 보태서, 어느 심술궂은 신이 당신이 적어둔 목표에 괄호를 바꿔버려도, 우린 영영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괄호 안의 일로 성공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그걸 할 수 있을까.


 내 모든 꿈과 목표가 이러했다. 인생을 10년 단위로 나눠, 자로 잰 듯 선을 쫙쫙 긋고, 칸 마다 이렇게 적었다. 10대에는 이런 걸 이룬다. 20대에는 저렇게 명예를 얻고, 30대에는 요렇게 돈을 모아서, 40대에는 드디어 성공한 삶을 누린다. 사실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남들의 인정을 받으며, 성공한 1%로 사는 걸 꿈꿨다. 그런데, 그건 하고 싶은 일로만 가능한가?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잘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두 개가 다르거나, 지금 하는 것과 정 반대인 경우가 많다. 성공이 하고 싶은 거라면, 오히려 잘하는 일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이웃집에 신이 산다.”라는 영화에서 답을 얻었다. 이 영화에서 신의 딸인 에아는 인류의 사망일을 문자로 전송해버린다. 심보가 고약하며, 인간에게 고통 주길 좋아하던 신은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들은 말이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나한테 꼼짝 못 하는 거라고!
 그래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이 긴장하는 거야!
 근데 죽는 날을 알면, 누가 개고생을 하겠어?
 다 하고 싶은 거 하지! 이제 알겠어?


 정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신의 말처럼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내일 당장 죽거나, 다음 주에 죽는 사람이 오늘부터 일을 시작해서 성공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니 이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타인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일. 거기서 오는 고생이란, 적어도 이유 없는 개고생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는 내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둘 다 각기 다른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 하지만, 착각으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하기만 바란다면,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 일을 해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실은 성공을 바라는 거니까. ― 물론 성공하면 최고지만, 이게 흔하다면 몇 사람만 뻔질나게 보도될 리가 없다. ― 지금 하고 있는 '잘하는 것'을 던져버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려 할 때, 내가 혹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인생의 가시밭길 끝에는 멋진 보상 따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길가의 은은한 꽃향기가 좋아서 가시 위를 계속 거닐고 싶다면, 그것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어쩌면 정답보다는, 함정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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