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May 04. 2019

13세 미만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노키즈존 | 다 어른만 뽑으면 나 같은 어린이는 어디에서 경력을 쌓나?


 얼마 전 단골 식당에 갔다가, 문 앞까지만 가고서 돌아 나왔다. 창문에 영어로 조그맣게 ‘NO KIDS ZONE’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어른들 뿐이라 들어갈 순 있었지만, 나는 사회화에서 실전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식당 운영 방침에 동참해줄 수가 없다. 그렇게 단골 식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는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 가면 갑자기 귀를 막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소리치며 뛰기도 한다. 뭐, 모두가 똑같진 않지만 대부분 비슷한 반복행동을 보인다. 그래서 장애아를 둔 가족은 음식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는 뷔페나, 칸막이가 없는 식당, 혹은 사람이 빼곡한 대중교통, 조용한 카페 등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에 비해 내 동생은 얌전하고 조용한 편이다. 내 앞에 놓인 음식만 먹어야 하고, 밖에서 소리치고 난동을 부리면 혼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걸 알게 하려고, 우리 가족은 15년을 넘게 동생을 가르쳤다.

   

 어릴 때, 그는 길가다가 슈퍼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무조건 들어가서 자유시간이나 스니커즈 같은 초코바를 집어다가, 계산도 하기 전에 뜯어서 제 입에 넣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게 주인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했고, 돈을 주고 계산하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이게 돈이야. 이게 있어야 초코바를 먹을 수 있어. 계산하기 전까진 먹으면 절대 안 돼!”


 파란 종이와 동그란 쇳덩이를 쥐어다 주며, 이것과 초코바를 교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과정을 4년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슈퍼에 들어가도 얌전히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가 됐다. 대신 ‘빨리 계산하세요. 얼른 입에 넣고 싶어요!’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들어가자마자 난장 부리는 것 보다야 나았다. 그 후로,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는 걸 가르치는데 6년, 대중교통에서는 뛰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5년, 이 당연한 것들을 도합 15년을 걸쳐 가르쳤다.


 그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옆 테이블의 아이가 울면서 널뛰더니 갑자기 음식을 집어먹어 황당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깍깍 소리치는 아이 때문에 누군가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편히 쉬지 못했을 것이다. 굳이 사람들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눈빛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는 이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했다. 나이를 먹고 몸집이 커졌을 때, 밖에서 난동을 부린다면 서로 더 곤란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집안에서만 생활할 수도 없었다. 동생이 사회 속에서 살려면, 반드시 사회인이 되어야 했다. 집에서 하는 백번의 교육보다는 한 번의 실전이 나았다. 15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오면서, 동생은 민폐를 끼치면 사과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얌전히 있었다면, 사과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요즘 태어났다면, 아마 이런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이게 돈이야. 하지만, 네가 이걸 준다고 뭘 먹을 수는 없어. 돈도 내야 하지만 네가 장애가 없어야, 혹은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아닐 때에만, 이 식당에 들어갈 수 있어.”



    





 나도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내 돈 주고,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도 않다. 날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건, 보기도 싫으니까 애초에 차단하면 좋겠다. 나는 이성과 지성이 있는 어른이기 때문에, 밥 먹다가 드러누워 아이처럼 떼쓸 일도 없다. 그러니 덜 자란 타인을 배려해줄 필요도 없다. 나는 이미 사회화가 다 되었으니까. 진짜? 이게 맞을까?


 날 때부터 문명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나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는 거다. ― 그래, 당신이 어릴 때는 얌전한 성인군자였다고 치자. 그런데 어른이 돼서 ‘난 아닌 데에!’ 논리로 아무나 차별한다면, 차라리 다시 어려지는 걸 추천하고 싶다. ―  조그만 꼬맹이도 생떼 쓰며 누웠다가 대판 혼나 봐야, 밖에서는 조용해야 된다는 걸 배운다. 지금 머리가 다 커버린 어른들도 그랬다. 살면서 누구 하나 불편하게 하지 않은 어른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말에는 공감을 하면서, 어린이에게는 어른이 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이들도 성숙해질 기회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자유를 침해받고 싶지 않아서, 노키즈존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뭐, 그런 생각이야 네 맘이지만, 기왕이면 몇십 년 뒤에 있을 이런 상황에도 불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키즈일 때 ‘노!’만 들어온 아이들이 커서 노늙은이존, 노틀딱존 따위를 만들어도 할 말이 없다. 사회화가 진즉에 됐어야 할 어른들도 더럽게 시끄러워 민폐일 때가 많다.


 "내가 어릴 때는 우리가 싫다며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아? 왜? 언제는 너네의 자유를 위해, 타인을 차단할 권리가 있다며?"


 '노! 키즈'를 들어온 아이들이 어떻게 '예스! 어른'을 외칠 수 있을까?






글쓴이의 말

 내 아들놈, 내 딸년이라고 불리던 아이들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하나의 인격체로 끌어올린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1899년생이신 걸 감안하면, 21세기는 아무래도 시대를 역행하는 중입니다. 더불어, 진상들은 남녀노소 나이불문 있습니다. 훈육받을 기회가 없던 아이들은 어떤 손님으로 자라게 될까요? 차라리 노 휴먼을 외치세요. 깔끔하고 조용하고, 장사하기 좋으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15년 동안 제 동생이 그럭저럭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슈퍼 사장님, 고깃집 사장님, 저희 옆 자리에 있었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자폐를 가진 아이가 얌전히 뷔페를 갈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 동생은 집밥이나 배달음식 밖에 몰랐겠죠. 덕분에 제 동생의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 SNS로 더 자주, 가깝게 만나보아요!

유달리의 트위터

유달리의 인스타그램

유달리의 그라폴리오


▼ 제가 쓴 <나다운 건 내가 정한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여기를 클릭 시 구매 링크로 이동

매거진의 이전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중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