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더위도 식힐 겸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찾던 중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 “악은 이토록 쉽고 간결하고 명쾌한 것이던가.”가 눈에 띄어 읽게 된 좀비물 소설이다. 사실 좀비물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믿고 보는 박찬욱 감독 영화처럼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실화를 바탕으로 덤덤하게 각색한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주인공 쿠엔틴은 미국 중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겉으로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삼십 대 초반의 백인 남자다. 아버지는 존경받는 대학교수이고, 아들은 가족들한테 사랑과 존중을 충분히 받으며 지낸다. 그리고 남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운전할 땐 속도규정도 꼭 지키는 인물이다. 특이할 점은 동성애자라는 점.
이토록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 내면에는 깊은 어둠과 도덕성이 결여된 이면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흑인 아이를 성폭행하다가 잡혀서 2년간 보호감찰 중이지만, 자기만의 좀비를 만들고자 젊은 남자들을 납치 감금하고 어디서 본 대로 생사람 눈에 송곳을 찔러 넣어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뇌수술을 감행한다. 당연히 매번 실패하고 죽이고 만다. 수많은 살인이나 성폭행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나 감정은 없고 오로지 목표물과 자신의 충실한 종이 되어줄 좀비가 필요할 뿐이다.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이 외로움을 채워주고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읽고 실존 인물에 대해 찾아봤는데 더 가관이었다. 성폭행, 살인에 식인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은 괴물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뉴스들이 있지만, 이 소설이 탁월한 점은 너무나 쉽고 무감각하게 악이 묘사되어, 마치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치 다음날 숙취 때문에 집에서 쉬다가 엄마한테 잔소리 듣는 것처럼, 쿠엔틴은 한차례 감금 살해 후 집에 찾아온 아버지한테 심한 악취가 쥐가 섞은 냄새라며 둘러대는 모습이 참 태연하다. 그에겐 인간이 그냥 실험용 쥐처럼 느껴질 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등에서 보여졌던 처절함과 복수심, 죄와벌 같은 철학적인 화두들이 던지는 무거움과는 이 책은 거리가 멀다. 싸이코패스의 내면은 우리들처럼 나름의 논리와 일관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내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소름 끼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증오해 죽기를 바라거나 은행을 털어 무인도에서 왕국을 세우겠다는 식의 불법을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성경에서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 말로도 이미 죄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해서 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악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