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한 새날
문재인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첫 입성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두 번째 청와대 입성이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역할이 바뀌어 하는 두 번째 입성을 지켜보게 된 것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자신의 뜻을 함께 펼칠 군주를 찾아 해맨 공자는 어떤 이유로 13년이나 주유천하를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이상을 군주의 권력 안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그가 꿈꾸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유입니다. 그의 이상 정치, 인을 기본 덕목으로 도덕 정치, 즉 탕평,개혁,실행을 위해 덕치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것입니다. 임금이 인격을 수양하고 극기하는 자세로 정치에 임해서 형벌보다는백성들의 본성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펼치는 인정의 정치인 것이지요.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도덕정치를 함께 실현할 군주를 찾았으나 공자의 제안은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은 춘추 시대 후반기로써 부국강병책에 의해 힘으로 권세를 확보하려한 제후국들이었기에덕치주의가 주목을 받을리 만무였던 것이지요. 무력, 영토 확장과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권력 유지에만 급급했던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그 상황과 흡사한 시대였습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시·서·역·예·악·춘추를 재편찬하여 이를 토대로 후학을 가르치는데 더욱 정진하게 됩니다. 결국 교육만이 그의 신념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긴 것이지요.
공자를 추앙하던 이도 그렇지 않던 이도 공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는 한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날 자로가 늦어져 성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석문에서 묶고 다음날, 새벽에 성안 으로 들어가려는데 문지기가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습니다. 자로가 공자에게서 오는 길이라 대답하니 문지기가 말합니다.
‘ 공자,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행하는 그 사람 말인가?”
후일 공자는 자신의 생에 대해 이렇듯말했습니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살에뜻을 세웠고, 마흔살에현혹되지 않았고, 쉰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살에 진리를 이해했으며, 일흔살에이르러 어떤 마음이 찾아와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정치가는 만능 슈퍼맨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듯 국민을 위한신념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5년 임기를 마친다면 후일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잔혹했던 과거를 과거로 기억하게 된 것은일보 전진한 오늘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서 변화를 맞았다고 기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새 대통령에게 맡긴 우리의 5년 시간, 부디 탕평,개혁,실행을 위해 충실히 써 달라고 부탁 드리며,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