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8(토)
‘애들이랑 세차나 하러 갔다 올까’
‘애들이랑 바람 좀 쐬러 갔다 올까’
‘아내가 이번 주말에는 화장실 청소 좀 꼭 하랬는데’
집에 머물면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다. 한 개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점심시간을 전후로 해서는 한참 동안 찰흙을 하며 놀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둘이 했는데 그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 나한테 같이 하자는 소리도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애들 찰흙 하는 거 구경하는 척하면서 휴대폰도 보다가, 책도 읽다가, 기타도 치며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서윤이 낮잠을 재우러 들어가서 함께 잤다. 잠든 게 아니라 잤다. 1차로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가 실패하고 나왔을 때 아내가 말했다.
“아이고, 서윤아. 왜 안 자. 엄마도 좀 자자”
평일 밤에 재우는 건 노동이지만, 주일 낮에 재우는 건 휴식이다. 서윤아, 이제 주말에는 아빠랑도 잘까? 엄마는 매일 너 재우느라 힘드실 거야.
소윤이에게 어버이날의 의미를 설명했더니, 소윤이가 카네이션은 어려워서 못 만들었다며 찰흙으로 만든 여러 쿠키와 꽃을 선물했다. 격렬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소윤이가 만들어준 찰흙 공예품이 보잘 것 없어서가 아니라 낮의 분위기에 취해서 그랬다. 뭔가 늘어지고 처지는 분위기 속에 그걸 받았더니 그렇게 됐다. 소윤이는 ‘엄마가 잠에서 깨면 엄마한테도 줄 거’라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유심히 지켜봤는데, 아내도 뜨뜻미지근했다. 소윤이가 받고 싶은 사랑의 언어도 ‘선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소윤이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사랑의 언어가 ‘선물’인 건 확실하다. 반응이라도 확실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했다. 겉으로 보기에 소윤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저녁에는 처가에 가서 밥을 먹었다. 가는 길에 아구찜을 포장해서 갔다.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소윤이도 함께 내렸다. 시윤이는 자고 있었고.
“아빠. 안아주세여”
“그래. 이리 와”
얼마 전에 애들 재우기 전에 슬쩍 물어봤다. 시윤이한테 먼저 물어봤다.
“시윤이는 지금 사랑이 얼마나 차 있어? 자, 봐봐. 0부터 10까지 있는데 10은 사랑이 꽉 찬 상태고 0은 하나도 없는 상태야. 시윤이는 어느 정도 찬 거 같아?”
“음, 10”
“시윤아. 꼭 10이라고 말 안 해도 되는데. 시윤이 마음이 진짜로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진짜로 10이야?”
“음, 8?”
“8 정도?”
“네, 8”
“그렇구나. 그럼 어떻게 하면 나머지 2가 다 채워질 거 같아?”
“음, 많이 안아주면”
시윤이는 누나의 대답을 따라하는 경향성이 매우 짙어졌다. 소윤이는 화장실에서 아내와 같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게 다 들렸다. 소윤이도 8이라고 대답했고 많이 안아주면 채워진다고 했다. 많이 안아주면 좋겠다는 소윤이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제 소윤이를 안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물론 아내가 앉아서 안아주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걸 용납하지 않는 두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게 생각나서 안아달라는 소윤이의 요청에 바로, 기쁘게 팔을 벌렸다. 물론 이제는 나도 버겁다. 최대한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제 1분도 힘들다.
“어우, 소윤아. 아빠 너무 힘들다. 이제 안 되겠어”
“아빠. 저 무겁져?”
“그러게. 소윤이가 밥을 많이 먹더니 엄청 컸네”
“저 이제 22kg 이에여”
“우와. 진짜? 엄청 무겁네”
아기처럼 내 볼에 볼을 착 붙이고 가만히 있는 22kg, 7살 딸을 안는 느낌이 참 좋았다. 1분을 넘기기 힘들긴 했지만. 소윤이든 시윤이든 둘이 있으면 느낌이 또 다르다. 얼마 전에는 시윤이가 불쑥
“아, 언제 아빠랑 둘이 데이트하고 싶다”
라고 말했다. 나도 나지만, 엄마랑 둘이 데이트하는 걸 엄청 좋아할 텐데. 아마 애들도 서윤이 때문에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꿈도 안 꾸는 모양이다. 단유가 완전히 이뤄지면 하루속히 아내를 내어줘야겠다.
저녁으로 먹는 음식이 아구찜이라 과연 서윤이랑 무사히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집에서 먹는 거긴 해도 낮은 상을 펴고 먹는 거라, 서윤이가 훼방을 놓으려면 얼마든지 놓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서윤이가 먹을 밥도 있기는 했다. 서윤이 밥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서윤이는 밥을 따라 내 옆에 앉았다. 아구찜에 손을 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먹였다. 그렇게 잘 먹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상 위로 막 달려들지는 않았다. 상 주변, 어른들 주변을 맴돌며 이것저것 받아먹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다. 다시 내 옆에 앉지는 않았다. 덕분에 난 아구찜을 차분하게 음미했다.
서윤이는 이제 할머니 집은 완전히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집보다 넓고, 놀 것도 많아서 오히려 더 신이 난 것 같기도 했다. 그 덕에 올해도 어버이날 효도를 자녀들에게 대행시켰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전에는 보지 못했던 서윤이의 새로운 움직임이나 소리를 보며 엄청 즐거워하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즐겁게 놀았다. 놀 때는 즐거웠지만 시간이 짧은 만큼 헤어질 때는 둘 다 많이 아쉬워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윤이의 방해를 막아가며 볼링을 했다. 아내가 10분 뒤에 갈 거라고 고지하자 소윤이는 울기 직전까지 갔다. 남은 10분을 울다 갈 건지 10분이라도 재밌게 놀다 갈 건지 잘 생각해 보라는 말에, 눈물을 꾹 참고 남은 10분을 알차게 보냈다.
“조심해서 가라. 오늘 와 줘서 고맙다”
올해 어버이날도 자녀를 앞세워 자녀 노릇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