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만 덕을 본 효도

21.05.09(주일)

by 어깨아빠

서윤이는 예배드리러 가는 길에 잠들었는데, 교회에 도착해서 유모차로 옮길 때 두 눈을 번쩍 떴다. 울지만 않으면 함께 예배드리는 게 그다지 힘들지도 않지만,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난감한 점이 있다. 엄청 시끄럽다. 요즘 한창 ‘이이’, ‘잉잉’ 같은 소리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데 타고난 목청이 좋아서 엄청 까랑까랑하다. 소윤이도 목소리가 크고 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소윤이보다 한 수 위인 듯하다. 아무튼 작정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엄청 시끄럽다.


어쩔 수 없이 아기띠를 하고 예배당 밖 로비로 데리고 나왔다. 처음에는 ‘왜 자기를 안느냐’는 듯 파닥거리다가 금방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나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먼저 눈웃음을 살살 쳤다. 웃기도 엄청 웃었다. 서윤이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냐면, 내가 뽀뽀를 요청하면 요청하는 대로 다 해 줬다. 스피커로 들리는 설교에 집중해야 했는데, 서윤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서윤이의 눈에 졸음이 가득한 게 보였다.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에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과 비슷했다. 목사님 한 분이 ‘별로 안 졸려 보이는데요’라고 말씀하고 지나가셨다. 아이들은 언제나 연기에 능숙하다. 서윤이는 5분도 안 돼서 잠들었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내 얼굴을 한 번씩 올려다보며 장난을 쳤다. 빨리 이 사실을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여보. 서윤이가 내가 뽀뽀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줬어. 나한테 얼마나 애교를 부리는지’


예배 시간이라 그러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서윤이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쭉 잤다. 서윤이가 깨지 않도록 유모차 덮개도 잔뜩 내려서 덮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어떤 집사님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유모차 안을 슥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깼는데요?”


서윤이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내가 안으려고 했더니 바로 엄마를 찾으며 엄마 쪽으로 팔을 뻗었다.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불과 30-40분 전의 그 행복했던 시간은 모두 잊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린이 예배를 드렸다. 시윤이는 빨리 나왔는데 소윤이가 안 나왔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가고 소윤이를 포함해서 두어 명의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예배 후에 엄마, 아빠에게 줄 감사 편지를 만든 모양인데, 소윤이가 그걸 엄청 꼼꼼하게 꾸미고 있었다. 평소 소윤이의 모습을 아는 아내나 나는 바로 이해가 됐다. 이럴 때 고민스럽다. 뭐 크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 거니 별다른 이야기를 안 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그래도 선생님들이 다 기다리고 계시니 ‘이런 자리(?)’에서는 적당히 하고 일어서는 것도 좋다고 가르쳐야 하는지. 난 전자의 입장이지만, 내 생각이 혹시 잘못된 건가 싶기도 하다. 일단 오늘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차에 타서 소윤이가 만든 감사 편지를 보고 놀라며 얘기했다.


“소윤아. 이거 소윤이가 다 칠한 거야?”

“네”

“이것도?”

“네”

“진짜? 이렇게 꼼꼼하게? 진짜 잘 칠했네”


아내의 가방에는 시윤이가 만든 편지도 있었다. 아내에게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로


“시윤이도 얼른 칭찬해 줘”


라고 얘기했다.


“시윤아. 시윤이도 이거 다 칠한 거야?”

“네”

“진짜? 시윤이가 이렇게 잘 칠했단 말이야?”

“네”

“우와. 진짜 대단한데?”


시윤이의 있는 꼴 없는 꼴 다 보는 아내보다는, 좋은 모습만 볼 때가 많은 내가 시윤이를 더 애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항상 신경이 쓰인다. 시윤이가 조금이라도 칭찬과 관심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시윤이는 굉장히 감성적이다. 그래서 칭찬의 효과가 아주 크다. 소윤이도 칭찬을 물론 좋아하지만, 칭찬을 들어도 힘든 건 힘든 거다. 시윤이는 다르다. 칭찬을 들으면 힘든 게 힘들지 않게 된다. 그만큼 항상 칭찬이 고프고 칭찬을 좋아하는 게 시윤이다.


오늘은 (내) 엄마, 아빠에게 가기로 했다. 문제는 엄마와 아빠가 한사코 오지 말라며 막는 거였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만나기로 했다. 대신 집이 아닌 서울의 모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딱 어버이날 선물만 드리고 헤어지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는 굳이 어버이날이라고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만나면 시간이 길어지니 피곤하셔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짧은 만남을 약속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단단히 일러뒀다.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만 하고 헤어질 거라고.


우리가 먼저 도착했는데 마땅히 기다릴 곳이 없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 근처의 놀이터에서 잠깐 애들을 풀어줬다. 점심으로 산 김밥도 하나씩 입에 넣어줬다. 엄마와 아빠가 금방 와서 오래 놀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김밥 한 줄씩 다 먹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를 만나자마자 헤어지지는 않았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는(?) 정도랄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를 계속 외쳤다. 오늘만큼은 정말 칼같이 차단하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엄마와 아빠가 먼저 ‘조금만 더’를 받아줬다. 합정역에 있는 식당에 가서 보쌈을 포장해 줄 테니 그걸 가지고 가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합정역에 가는 시간만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 거다. 한 15분 정도의 거리밖에 안 되긴 했지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항상 변수가 존재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식당은 마침 저녁 장사 전 휴식 시간이었다. 30분 정도를 더 있어야 했다. 뜻한 바와 다르게 만남이 길어지는 게 괜히 신경이 쓰이고 죄송했다. 그러면 그냥 기다리지 말고 헤어지자고 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렸다가 가지고 가야 한다며 단칼에 차단 당했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시간을 또 벌었다. 근처에 있는 카페까지 갔다. 마침 넓은 야외 자리가 있는 곳이라 애들이랑 있기에도 딱이었다. 엄마, 아빠는 이렇게 될 걸 알고 그렇게 오지 말라고 하셨던 걸까. 누구를 위한 효도일까. 부모님을 편히 쉬게 해드리는 게 진정한 효도였을까. 그래도 거기가 끝이었다. 보쌈을 받았고, 이번에는 진짜로 헤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예상보다 길어진 만남 덕분에 아쉬움을 많이 달랬는지 즐겁게 헤어졌다.


차에 타자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공원은 어디로 갈 거에여?”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찍 헤어지는 대신 공원에 가기로 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찍 헤어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공원에 가는 건 없던 일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시간이 많이 늦기도 했다.


“소윤아. 공원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로 헤어질 때 가자고 한 거지. 할머니, 할아버지랑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놀아서 오늘 공원은 못 가. 시간이 많이 늦었어”

“아, 그래여?”


소윤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전혀 피곤하지 않다. 이성과 합리의 인간과 대화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진짜로 어떤 순간에는 나보다 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공원은 ‘나중에’ 가기로 했다. 대신 아쉬울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저녁 먹고 잠시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사 주신 보쌈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서윤이도 좀 줬는데 엄청 잘 먹지는 않았다. 잘 먹는 듯했지만, 아내와 나의 성에 차지 않았다. 장난만 치고 정작 밥은 먹지도 않고. 갑자기 짜증 내고. 요즘은 서윤이 밥 먹이는 게 쉽지 않다. ‘하아, 오늘은 잘 먹으려나’ 같은 두려운 마음으로 임할 때도 많다. 자기가 다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하는 의지가 강한 시기를 지나느라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까다롭다. 요구도 많고 수용되지 않으면 폭발도 많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갔다. 산책을 하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였다. 하루 종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산책이었지만 놀이터에서도 놀고 최대한 소윤이와 시윤이의 욕구(?)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해 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매일 1-2시간씩 뛰어놀아야 할 시기라는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뛰어놀고 싶을까 싶다. 그래도 무한정 놀 수는 없다. 특히 밤에는. 적당히 놀고 집에 들어왔다.


무척 피곤한 걸 보니 이번 주말도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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