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0(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유전자의 신비를 많이 경험했다. 푹 패인 보조개, 모태 기독교인이라는 걸 의심하게 만드는 민머리, 가만히 있어도 ‘밖에서 많이 놀았나 보네’ 소리를 유발하는 구릿빛 피부, 시대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쌍꺼풀 없는 눈. 이 모든 걸 세 아이가 똑같이 지녔다. 이런 건 같은 피를 나눈 사이니 유전자도 똑같겠거니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딱 하나, 손가락 빠는 게 정말 신기하다. 어쩜 셋 다 손가락을 빠는 것도 모자라서 그 메커니즘(?)도 똑같은지. 덕분에 육아 꽤나 해 봤다는 집에서도 보기 힘든 문물을 우리는 벌써 세 번째 보게 됐다.
이른바 닥터썸이라는 건데, 엄지손가락에 끼워서 손가락을 못 빨게 하는 도구다. 이런 제품이 있다는 건 우리 애들처럼 엄지손가락을 주야장천 빠는 애들이 많다는 얘긴가. 제품의 원리는 간단하다. 보통 엄지손가락을 빨 때,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빈틈이 없도록 입술로 단단히 조인 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빤다. 쪽쪽이 대신 손가락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닥터썸은 이걸 재미없게 만든 거다. ‘쪽쪽’빠는 맛이 없도록, 구멍 난 빨대를 빨 때처럼 뭔가 허망해지도록 틈을 주는 거다. 간단한 원리에 비해 겉모습은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손가락을 다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소윤이는 돌이 막 지났을 무렵에 이걸 사용해서 수월하게 손 빠는 습관을 고쳤다. 시윤이도 돌 때쯤 착용을 했는데 너무 일찍 뺐다. 고쳐졌다고 생각해서 뺐는데 다시 손을 빨았다. 다시 닥터썸을 꼈지만 그때는 자기 힘으로 쥐어뜯어서 풀어버렸다. 그 결과 시윤이는 아직도 손을 빤다. 한참 고쳐진 듯하더니 요즘 또 많이 빤다. 사실 손 빠는 게 ‘나쁜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 애들은 너무 손 빠는 일에 열중하고, 엄지손가락에 상처가 날 정도로 빨아서 왠지 모르게 ‘고쳐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시윤이 때의 실패(?)를 경험한 아내와 나는, 서윤이도 진작에 교정을 해주기로 했다. 시윤이 때처럼 경솔하게 완치를 선언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하고.
아내는 낮에 얼떨결에 닥터썸을 채웠다고 했다. 서윤이가 겁도 없이 자꾸 달라 그러고 만지작거리길래 그랬다고 했다. 서윤이는 엄청 울었다고 했다. 악을 있는 대로 쓰면서. 아내에게 안겨서 한 시간이나 울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직 섣부른 판단이지만, 아무리 봐도 셋 중에 가장 고집이 세지 않나 싶다. 우는 끈기(?)도 어마어마하고.
잠에서 깬 서윤이는 왼손(닥터썸 한 손)을 안 썼다고 했다. 소윤이도 그랬다. 소윤이는 오른손을 안 썼다. 한동안 뭔가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을 마음껏 빨게 놔둬도 그렇게 우는데, 이제 얼마나 더 울까 싶어 걱정 아니 무섭다.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무서울 거다. 내 몸은 머리, 가슴, 팔, 손, 허리, 등, 배, 다리, 발로 이뤄졌다. 아내의 몸은 머리, 가슴, 팔, 손, 허리, 등, 배, 다리, 발, 그리고 강서윤으로 이뤄졌고. 서윤이가 몸의 일부로 여겨질 만큼 붙어 있는 아내에게 과연 습관 교정의 시간이 어떻게 다가올지. 오늘 저녁에도 밥을 잘 먹다 말고 갑자기 목놓아 울었다. 엄마, 아빠가 먹는 걸 자기도 먹겠다는 게 이유 같긴 했다. 못 먹게 하는 것도 서러운데 손가락도 못 빠니 더 열받고, 손에는 웬 이상한 게 채워져 있고 거기에 졸리기까지 하고. 닥터썸(혹은 그걸 찬 자기 손)이 슬픔과 분노의 증폭제 역할을 하는 느낌이다.
참 역설적이게도 서윤이는 어젯밤에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9시쯤부터 자기 시작해서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한 번도 안 깼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웬 당연한 소리인가 싶을 일이지만 나는 믿기지 않았다.
“여보. 서윤이 진짜 안 깼어?”
“그런 거 같은데”
“나 새벽에 깼는데? 서윤이 울음소리 들은 거 같은데?”
“그래? 그럼 내가 못 듣고 안 깼나?”
“그런가? 아무튼 거의 처음 아니야?”
“그렇지. 태어나서 처음이지”
맙소사. 세상의 빛을 본 이후로, 무려 402일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니. 아내와 나는 402일 동안, 끊어지지 않은 밤을 보낸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말이네. 대견하다. 욕봤고.
부디 닥터썸의 통곡이 오래가지 않기를. 손가락 없어도 얼마든지 밤새 잘 수 있다는 걸 좀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