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주신 선물, 계란

21.06.27(주일)

by 어깨아빠

아이들 아침으로 계란밥을 줬다. 오늘도 엄청 부지런히 준비한 덕분에 늦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애들을 준비시키다가 문득 지난주의 다짐이 떠올랐다.


“여보. 얼른 준비해. 여보 꾸며”

“사실 꾸밀 것도 없어. 머리만 감아도 상쾌해”

“머리 감으면 되지”

“머리 어제 감았어”


아내는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기도 하고, 원래도 화장을 엄청 옅게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치장에 욕심을 낼 만큼 여유도 없고.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주로 맨 얼굴로 다녔다.


“하아. 이제 화장으로 안 가려져 여보”

“뭘 안 가려져. 가릴 게 뭐가 있다고”

“여기 봐봐. 이런 거 안 가려지잖아”


아내는 자신의 노화를 안타까워했다. 하긴 나도 요즘 거울 볼 때마다 내 피부가 이렇게 중력의 법칙에 충실했나 싶은 느낌이 들 때마다 다소 슬프긴 하다.


언제나처럼 소윤이와 시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에 갔고, 서윤이는 우리와 함께 어른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 덕분에 우리는 항상 맨 뒷자리에 앉는다. 서윤이가 조금 돌아다닐 수도 있고, 불시의 난동을 부리면 재빠르게 안고 로비로 나가기도 좋다. 서윤이는 전혀 졸리지 않은 듯 활발하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돌아다녔다. 그나마 아내와 내 주변을 벗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만 한 번씩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 아직 1차원의 소통만 가능하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 지켜야 할 예절 따위는 서윤이에게 없다. 그래도 요즘은 ‘쉿’을 알아듣기는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진짜 조용해지기도 하지만, 내키지 않으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날 가만히 두라는 듯 운다. 오늘도 그랬다. 약간 졸린 듯 아내에게 안겨 있다가도 다시 내려가서 놀다가 시끄럽게 소리 내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이것도 얼마나 다정 아니 거의 왕세자를 받들 듯 얘기하는데) 싫다고 짜증 내고. 결국 로비로 데리고 나갔다. 오늘도 로비까지 가는 동안에는 엄청 울다가 로비에 나가니 조용해졌다. 잠도 금방 들었다. 많이 졸렸나 보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가는데 보통 어른 예배가 먼저 끝나기 때문에 가서 기다린다. 고작 한 시간 떨어져 있는 건데 다시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날 때 참 반갑다. 우리는 가뜩이나 평일에는 아예 떨어지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에게 참 많이 듣는 ‘품 안의 자식’일 때가 얼마나 좋은 건지 문득문득 느낀다.


아내와 나는 주일 아침에는 대체로 밥을 먹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예배가 끝나고 점심때가 되면 무척 배가 고프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회에서 점심을 줬기 때문에 밥 고민을 안 해도 됐는데, 이제는 매주 예배가 끝나면 뭘 먹어야 할지 정해야 한다. 집에서 먹든 밖에서 먹든 뭘 먹을지 정해야 한다. 문제는 아내와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다소 어른 중심의 메뉴를 고르기도 한다는 거다. 그래도 요즘에 자주 갔던 국수 가게나 생선구이 가게는 애들이랑 먹기에 좋은 곳이었다. 다만 몇 주 연속으로 가다 보니 좀 지겨워서 오늘은 다른 곳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찾은 곳이 김치찌개 집이었다. 애들이 먹을 만한 건 계란말이뿐이었다.


“여보. 우리 애들 뭐 계란만 먹고 사네?”

“그러니까”


많이 미안했지만 다른 식당을 찾아볼 여력이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소윤이와 시윤이 심지어 서윤이까지도 계란말이를 유일한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 덕분에 아내랑 나는 굶주린 배를 아주 잘 채웠다.


밥 먹고 나서는 당연히 카페에도 들렀는데 아내가 잠깐 앉아서 마시고 가자고 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진짜? 서윤이 괜찮을까?”

“그럼 그냥 갈까?”

“아니야. 잠깐 앉아서 마시지 뭐”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한 생딸기 주스도 샀다. 서윤이만 먹을 게 없었다. 다행히 서윤이는 그 사실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주 잠깐(한 20분 정도) 앉아 있는 동안 아주 평화로웠다. 평화로워도 마음은 뭔가 불안했나 보다. 커피를 순식간에 다 마셨다.


집에 와서는 틈새 시간을 이용해 우노를 했다. 서윤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서윤이에게 ‘너도 같이 게임하는 거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노력했다. 서윤이의 훼방 아닌 훼방을 막으며 게임을 진행하느라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세 판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는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나왔다. 서윤이가 태어난 뒤로는 애 둘을 데리고 나가는 게 과연 아내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일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오히려 언니나 오빠가 없으면 더 징징대고 아내에게 찰싹 달라붙는다는데. 부디 서윤이와 너무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길 바라며 나왔다. 사실 소윤이랑 시윤이를 생각해서 데리고 나가는 것도 있다. 밖에 나가서 원 없이 뛰며 놀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이런 거 다 핑계고 내가 놀러 나가는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총을 챙겨서 나왔다. 다 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두 개 모두 온전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시윤이 물총은 손잡이가 깨지고, 소윤이 물총은 펌프 부분이 휘고. 이럴 때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러게. 조심 좀 해서 써야지. 어제 산 건데 뭘 그렇게 험하게 써’라는 식으로 말할 때가 많다. 오늘은 그런 걸 생각하고 다르게 말했다.


“아 그러게. 괜찮아. 그거 별로 안 비싼 거라 원래 안 튼튼해. 아빠가 나중에 또 사 주면 되지 뭐. 오늘 재밌게 잘 놀았으면 되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시켰다. 소윤이를 씻길 때마다 마치 정액권 끊어 놓은 게 하나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소윤이가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홀딱 벗는 일도, 소윤이를 씻겨주는 일도 곧 ‘아내만’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강시윤은 뭐. 신체의 변화를 아주 자세히 관찰해 줄 테다.


아내는 우리가 밖에 나가서 노는 동안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 돼지불고기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대부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식단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아침, 점심 모두 계란을 벗 삼아 밥을 먹인 게 미안했는데, 그 미안함을 거두기에 충분한 음식이었다. 물론 온전히 아내의 노력이었다.


서윤이는 역시나 언니와 오빠가 없으니 더 많이 울고 아내를 힘들게 했다고 했다.


“와, 진짜 달라. 완전히 달라. 언니랑 오빠 오니까 너무 달라”


덕분에 저녁 먹으면서 서윤이의 애교를 온 가족이 원 없이 감상했다. ‘노래=소리 지르기+힘주기’로 오해하고 있는 서윤이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라고 하기만 하면 악악 소리를 지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힘주는 시늉을 했다. 아내나 나는 물론이고 소윤이와 시윤이까지 그거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서윤이가 아내와 나에게도 막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막내라는 걸 많이 느낀다.


소윤이가 가끔 이런 말을 하는데 정말 크게 공감한다.


“아빠. 서윤이가 없었을 때가 잘 기억이 안 나여”


아빠는 벌써 세 번째 그걸 느끼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