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의 농도

21.07.22(목)

by 어깨아빠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밥이 아슬아슬하다고 했었다. 아이 셋에게 고루 먹이기에 다소 벅차 보이는 양이라면서. 게다가 먹을 반찬도 없다고 했다. 이 모든 고민을 뒤로하고 ‘어떻게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바람과 함께 잤다. 아내는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며 사진을 보냈다.


“밥이 있었어?”

“아슬아슬하게 한 그릇 반”


냉동실에 있던 돈까스와 계란찜이 반찬이었다.


“여보는?”

“나는 간헐적 단식하지 뭐”


오히려 서윤이가 수유하던 때는 아내가 밥을 잘 챙겨 먹었다. 서윤이도 똑같은 ‘한 입’이 되고 나서는 애들 챙겨주다 입맛이 사라져서 안 먹기도 하고, 아내 몫이 남지 않아서 못 먹기도 한다.


분주한 아침 시간을 보낸 아내는, 오늘도 산책을 나갔다 왔다. 돌아오는 길에 쭈쭈바를 하나씩 사서 먹은 게 아이들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서윤이에게는 냉동실에 있던 얼린 젤리를 줬다. 먹으라고 준 건 아니었다. 그냥 차가운 기분만 느끼라고 까서 주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그 정도에도 만족했다.


점심은 콩국수였다. 아내가 사진을 보내줬다. 계란도 삶아서 반으로 예쁘게 쪼개어 넣고 오이도 채 썰어서 올리고 방울토마토도 잘라서 올린, 담음새가 아주 예쁜 콩국수였다. 이번에도 사진에는 세 그릇뿐이었다. 그래도 점심은 같이 먹었을 거다.


소윤이에게 용돈을 주기로 했다. 조금씩 돈 쓰는 훈련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음, 사실 그건 나와 아내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줘야지 줘야지 하면서 미루기만 하다가, 다가오는 아빠 생일에 자기도 뭔가 사 주고 싶다는 소윤이의 생각에 이번 주부터 주기로 했다. 조그만 지갑이 하나 필요했는데 집에 안 쓰는 건 따로 없었다. 지갑을 하나 주문했고 그게 오늘 집에 배송이 됐다. 시윤이는 서운해했다. 그래도 아내가 운영의 묘를 잘 발휘해서 서운함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이럴까 봐 시윤이에게도 작은 뭔가를 사주려고 했는데 생각도 못 하고 소윤이 것만 주문했다.


소윤이는 드디어 지갑이 도착했다면서 저녁 먹고 보여주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아직 모르나 보다. 엄마가 아빠에게 웬만한 일은 낮에 다 전해준다는걸. 그래도 모르는 척한다. 언제든 아빠에게 신이 나서 말할 수 있도록.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저녁을 먹기 시간이 늦기도 했고 모임 시간이 워낙 빠르기도 했다. 아이들을 굳이 서둘러서 재우지 않았다. 모임 초반부에는 애들도 아내와 나의 옆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라 옆에 있으면 아무리 애들이라고 해도 조금 신경이 쓰인다. 특히 소윤이처럼 멀리서도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신경 쓰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가 재우고 다시 나왔다.


요즘 소윤이의 뽀뽀가 좀 달라졌다. 한동안 엄청 얕고 스치듯이, 빼빼로 게임하다가 실수로 입술이 스친 정도로만 뽀뽀를 해줬다. 소윤이가 나에게. 요즘 들어 뽀뽀가 좀 진해졌다. 내가 맨날 진하게 해달라고 해도 얕은 뽀뽀만 건네던 녀석이 자기가 먼저 꾸우우우욱 입술을 눌렀다. 왜 변했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여보. 요즘 소윤이가 다시 좀 달라졌어”

“뭐가?”

“나한테 뽀뽀를 진하게 하던데?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아, 소윤이가 얼마 전에 나한테 얘기하던데”

“뭘?”

“자기가 아빠한테 요즘 뽀뽀를 진하게 하는데 왜 그러는지 아냐고. 자기가 들었대”

“뭘?”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보가 누구한테 얘기하는 걸 들었나 봐. 요즘 소윤이가 뽀뽀를 진하게 안 해준다 뭐 이런 얘기하는걸”

“그래?”

“어, 그래서 ‘그게 아빠가 좀 속상했나?’ 생각해서 진하게 해준다는데?”


그런 거였구나. 소윤아, 널 볼 때마다 생각해. 니가 우리 집의 첫째라서 너무 감사하고, 니가 딸이라서 더더욱 감사하고. 어쩜 이제 겨우 일곱인 니가 서른일곱인 아빠보다 속이 깊니. 아무튼 다시(?) 뽀뽀가 진해져서 아빠는 무척 좋단다. 아무리 서윤이의 침범벅 뽀뽀가 좋고 시윤이의 두툼한 입술이 좋아도, 너의 뽀뽀로만 충족되는 아빠의 기쁨이 있거든. 너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빠한테 뽀뽀하는걸 아끼지 말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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