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거 없어요?

21.07.28(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후 2시쯤 점심을 차린다고 했다. 오늘은 아무 모임도 없는 날이었지만 우리 애들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는 걸 증명했다고나 할까. 나도 주말에 한 번씩 느낀다. 별일 없이 애들이랑 놀기만 해도 바쁘다. 먹고 치우고 놀다 보면 어느새 다음 끼니 시간이고, 또 먹고 치우고 놀다 보면 또 그다음 밥때가 되고. 아내는 거기에 요즘 공부 시간까지 넣다 보니 꽤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랑 있을 때는 잘 나오지 않는 불량한(?) 태도가 보이면 훈육도 해야 하고.


아내는 퇴근하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여보. 먹고 싶은 거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응, 없는데”

“아니야. 없으면 안 돼. 뭐라도 말해 봐”

“진짜 아무거나 다 괜찮은데”

“있는 게 좋은데”

“여보 어딘데? 집 아니야?”

“집이지. 말해도 다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야”

“뭐야. 난 진짜 아무거나 괜찮아”


식욕이 없어서 먹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라 뭐든 잘 먹을 준비가 되어 있어서 먹고 싶은 게 없는 거다. 아내는 그 고민에서 해방되고자 나에게 전화를 걸곤 하지만 거의 대답은 비슷하다. 설령 진짜 내가 엄청 엄청 먹고 싶은 걸 말한다고 해도, 그건 아내가 준비하지 못한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화력 좋은 숯불에 구워 먹는 삼겹살.

식도부터 위장까지 뜨거워지는 듯한 순댓국.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백순대볶음.


이런 게 내가 진짜 먹고 싶은 음식이다.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들은 소윤이는 아내에게 아주 진지하게 얘기했다고 했다.


“엄마. 그럴 때는 아빠한테 이렇게 딱 얘기해야져. 여보, 먹고 싶은 걸 말해야 돼. 왜냐하면 나는 저녁을 준비하는 것보다 뭘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더 힘들어. 그러니까 여보가 정해줘야 돼. 이렇게여”


소윤이는 퇴근한 나에게도 앞으로는 아빠가 정해줘야 한다면서 그렇게 할 거냐고 재차 확인했다. 소윤아, 아빠는 순댓국.


서윤이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무엇보다 말이 부쩍부쩍 는다. 소통의 수준도 높아졌고. 이제 단순히 ‘까꿍’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다차원적인 소통과 놀이의 복합이 가능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 오늘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유독 기분이 좋았다. 퇴근한 나를 그 어느 때보다 반겨준 것은 물론이고 내내 아빠를 향한 호감도가 높았다. 잘 준비를 마친 언니와 오빠가 방에서 책을 읽는 동안에도 거실에 있는 아빠에게 계속 장난을 걸었다. 소윤이나 시윤이하고 다른 서윤이만의 매력이 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은 느낌이라면(실제로는 오기도 했겠지만) 서윤이는 ‘안 오겠지’ 싶을 때도 막 온다. 안 불러도 올 때도 많고. 내 품에 ‘착’ 안길 때의 그 극강의 ‘좋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밥 먹고 저녁에 애들 데리고 잠깐 나갔다 올까도 생각했는데, 어디까지나 퇴근해서 차에 탈 때까지의 생각이다. 막상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그러면 싹 사라진다.


얘들아, 미안해. 너무 덥고 많이 피곤하네. 주말에 열심히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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