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한 첫째, 신기한 둘째, 어이없는 막내

21.07.30(금)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방문을 닫고 출근 준비를 한다. 조심한다고 해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애들이 괜히 일찍 깰까 봐. 준비를 마치고 나면 방 문을 다시 열어 놓는다. 요즘에는 아침부터 너무 더워서 그렇게 해 놔야 시원하게 잘 잔다. 오늘은 소윤이가 나의 알람 소리에 함께 일어나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고, 소윤이 오늘 또 피곤하겠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방 문을 열면서 소윤이랑 또 인사를 나누려고 했는데 다시 잠든 듯 기척이 없었다. 한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어서 의외였다. 소윤이는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하고, 보통 다시 자는 일도 별로 없다. 시간이 지나고 아내랑 통화를 했는데 애들이 모두 늦게까지 잤다고 했다. 소윤이도 바로 잠든 게 맞았나 보다.


소윤이는 오늘도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첫째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엄마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상황에 엄마를 대신해 서윤이도 돌보고, 아직 제멋대로 고집부릴 때가 많은 시윤이와 적당한 선에서 의견을 조율하느라 고생도 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파에 있던 빨래를 개기도 하고.


시윤이는 요즘 매일 공부에 열심이다. 의외로(?) 끈기가 있어서 일단 앉으면 정해진 목표는 꼭 이루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이 정도까지 오는 데는 아내의 공이 매우 컸다. 목표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은 있으되, 앉아서 지루한 반복의 시간을 견디는 건 싫은 시윤이의 꼬장 아니 추태 아니 떼를 견디며 훈련한 결과였다. 아무튼 시윤이는 학습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퇴근한 나에게 오늘 어디까지 어떻게 공부했는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쓴 걸 보면 정말 성실히 정성껏 공부했다는 게 느껴진다. 신기하다. 시윤이가 이만큼 컸다는 게. 요즘은 편지도 자주 쓴다. 물론 글자는 없고 그림만 있는, 그림도 시윤이의 해설을 들어야만 이해가 가는 편지지만 시윤이 나름대로는 자기 능력을 모두 쏟아부은 편지다. 매일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자유자재로 쓰는 누나를 부러워하는 마음과 엄마, 아빠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모두 느껴진다.


서윤이는 말도 늘고 행동도 늘고 고집(?)도 늘었다. 요즘은 밥 먹을 때마다 자기가 숟가락질을 해서 먹겠다고 한다. 어느 정도 먹이고 나서 주려고 해도 아예 첫 숟가락부터 자기가 하겠다면서 울 때가 많다. 아내가 조금만 더 먹고 준다고 친절히 얘기하면 아주 사납게


“악악”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니,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와서 이렇게 찰지게 하는 건지. 누가 봐도 성질을 내는 걸 알 수 있게끔. 배는 고프니까 떠 주면 먹기는 하는데 먹는 내내 숟가락을 달라고 난리다. 물론 아내와 나는 이런 일로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이유와 까닭 없이 울며 엉겨 붙는 게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의 동요는 조금도 일지 않는다. 막내의 존재 자체로 만들어지는 위력과 특권은 곳곳에서 발휘된다. 내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아내는 오후에 잠깐 나갔다 왔고 내가 먼저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오늘은 저녁 준비할 시간이 없다면서 쭈꾸미를 먹자고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쭈꾸미 비빔밥과 아이들이 먹을 소고기 비빔밥을 포장해 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다 해 놨다. 가정적인 아빠의 전형은 전혀 아니었고, 이렇게 해 놔야 퇴근 시간도 당길 수 있어서 그랬다. 식탁을 다 차렸는데도 오지 않아서 잠시 소파에 누워 휴대폰 게임을 했다. 진짜 혼자 살았다면 소파에 누워 게임하는 게 지금처럼 달콤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의 여유와 고요함을 나도 모르게 즐겼다.


저녁을 다 먹고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어떡하지? 커피 너무 간절하네. 사러 나가야 하나”


내가 사러 갔다 오겠다고 했으면 아내에게 점수를 많이 땄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조금 귀찮았다. 내일 주말이니까 조금 늦어지더라도 아내가 사러 나가는 것도 괜찮았고. 또 아내와 내가 인정하는 A급 카페들은 아무리 늦어도 9시면 문을 닫는데, 이미 9시가 넘었을 때였다. 9시가 되기 전이었으면 내가 서둘러 나갔을 거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커피를 사러 나갔다. 요즘에는 거의 가지 않는 집 근처의,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는 카페로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라떼를 한 잔씩 사 왔는데, 아내는 두어 모금 마시자마자 실망했다.


“하아. 너무 맛이 없는데? 여보 커피는 어때?”

“그냥 뭐. 먹을 만해”


아내는 반 정도만 마시고 남겼다. 커피는 맛이 없어서 실망스러웠지만 낮에 산 체리가 있어서 괜찮았다. 아내는 오늘만큼은 커피의 결핍을 체리로 대신하는 게 가능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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