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31(토)
아내와 소윤이는 오전에 치과에 가야 했다. 꽤 이른 시간에 예약을 잡아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그래도 그 아침부터 돈까스를 튀겨서 먹인 걸 보면 꽤 이른 시간에 일어났나 보다. 나 스스로를 말하는 거다.
아내가 소윤이랑 치과에 갔을 때 난 뭘 해야 하나 고민했다. 왠지 집에 있기는 싫었다. 답답할 거 같았다. 그렇다고 갈 데도 없었다. 이 시국에. 갈 데가 있더라도 시윤이, 서윤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까 싶었다. 차라리 소윤이도 있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아빠아. 우리는 어디 가여어?”
“우리 그냥 시원한 마트나 가자”
조금 큰 마트에 가서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 아내와 소윤이의 치과 진료를 2시간 정도 예상했다. 마트에 가서 휘이 구경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고,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가기로 했다. 아내와 소윤이를 치과에 내려 주고 우리는 마트로 갔다. 거의 문 여는 시간에 갔는데도 꽤 사람이 많았다.
시윤이는 카트에 타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앉아 있었고. 카트와 유모차를 동시에 끌 수는 없었다. 서윤이도 카트에 앉히자니 약간 불안했다. 카트에 있는 벨트는 너무 헐거워 보였다. 서윤이를 아기띠로 안자니 그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그냥 서윤이도 카트에 앉히기로 했다. 시윤이는 짐 놓는 쪽에 앉히고 서윤이는 아기들 앉는 곳에 앉혀서 벨트를 채워줬다.
엄청 좋아했다. 두 다리를 앞뒤로 까딱까딱하면서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말은 못 해도 ‘나 기분 엄청 좋음’이라는 걸 누구나 알 것 같았다. 한 번씩 다리를 빼며 내 눈치를 살살 봤지만
“어, 안 돼. 서윤아. 다리 넣어”
라고 얘기하면 대체로 다시 바른 자세로 돌아왔다. 한 번씩 나를 시험하는 듯 못 들은 척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 아빠가 이놈 할 거야”
라고 얘기하면 웃으면서 다리를 넣었다.
마트에 들어간 지 한 10분쯤 되었을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왜?”
“여보. 어디야?”
“우리? 마트지”
“그래? 우리도 갈게”
“어? 벌써 끝났어?”
“어. 나는 염증이 심해서 일단 다음 주까지는 약 먹고 다음 주부터 해야 된대”
“아, 그래? 소윤이는 뭐래?”
“아, 소윤이는 지금 어금니 옆으로 제일 안쪽에 영구치가 나고 있대. 그래서 아픈 거래”
“아, 그렇구나. 그럼 끝난 거야?”
“어. 그쪽으로 갈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기다릴 걸 그랬다. 그래도 바로 올 것처럼 얘기하던 아내와 소윤이는 꽤 한참 걸렸다. 나중에 들어 보니 병원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했다. 소윤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앞머리는 이마에 착 달라붙은 상태였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내와 소윤이가 무지하게 반가웠다. 애초에 뭔가 목적(?)이 있는 외출이 아니었고 그저 ‘시간 때우기’였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꽤 컸다. 생각보다 많이 빠른 재회가 반가웠다. 마음에 커다란 짐이 훅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빠. 우리 이제 바로 가는 거에여?”
“그렇지. 여기서는 뭐 할 게 없잖아”
아이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랠 겸 필요한 것도 살 겸 잠시 다이소와 마트에 들렀다가 바로 차에 탔다. 아내가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자고 했다. 지난여름에 몇 번 갔던 곳이었는데 엊그저께 찾아보니 다른 지역(원래 있던 곳보다 조금 멀리)으로 옮겼다는 걸 알게 됐다. 차를 타고 나들이하는 기분도 내고 맛있는 것도 먹자는 생각으로 가기로 했다. 서윤이는 잠들었다.
“아, 우리 먹는 동안에도 잤으면 좋겠다”
“그러게. 그럼 평화롭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아내와 나의 바람대로 서윤이는 유모차에서도 곤히 잤다. 덕분에 여유롭게 점심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콩국수를 맛있게 먹었지만, 시윤이가 특히 잘 먹었다. 소윤이는 맛있다고 말은 하는데 포크질은 그에 못 미치는 느낌이었고, 시윤이는 다 먹고 국물까지 후루루룩 들이킬 정도로 열심히 먹었다.
“시윤아. 맛있어?”
“아빠아. 저는 이런 거 국물이 맛있더라여어”
서윤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서윤이는 다시 차에 태울 때까지 쭉 잤다. 깨자마자 카시트에 앉히면 배고프다고 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해탈한 아이처럼 멍하니 손가락을 빨았다.
“여보. 아침에 일찍부터 움직였더니 시간이 아직 두시도 안 됐네. 체감은 한 다섯 시 된 거 같은데”
아내 말처럼 많은 걸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는데 아직 오후 한복판이었다. 집에 와서는 좀 쉬다가 잠깐 내 차를 정리하러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세차를 하러 가고 싶었지만 서윤이만 혼자 두고 가면 너무 오랜 시간을 비우는 게 좀 마음에 걸렸다. 서윤이한테도 미안하고 아내한테도 미안하고. 서윤이는 이제 다 안다. 언니와 오빠만 데리고 나가면 슬퍼한다. 그녀의 슬픔은 또 다른 그녀인 아내의 몫이 되고. 세차까지는 아니고 차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버릴 짐만 정리하기로 했다. 그것도 꽤 많았지만.
“우와. 소윤아, 시윤아. 엄청 덥다”
“아빠. 진짜 덥다여”
그야말로 찌는 듯한 더위였다. 마스크와 살갗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더운 공기에 얼굴은 금방 땀범벅이 됐다. 그 무더위에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차를 정리하는 동안 차에 있던 킥보드를 타고 놀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코로나 때문인지 무더위 때문인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게 킥보드를 타고 논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잠깐이었고 너무 더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래도 즐거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우리가 나가자마자 현관 앞에 서서 오열을 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그 사이 난 저녁 준비를 했고, 바로 저녁도 먹었다. 저녁에는 아이들도 함께하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길고 긴 하루는 아홉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난 파전을 사러 나왔다. 이 또한 어제부터 약속(?)된 일이었다.
행복했지만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주말의 야식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에 불현듯 생각이 났다.
‘잠깐. 아까 자전거를 다시 실은 기억이 없는데’
혼자 조용히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역시나 자전거를 실은 기억이 없었다. 차 정리한다고 트렁크에 있던 자전거도 뺐었는데, 그대로 두고 온 것 같았다.
“여보. 자전거 있을까?”
“그러게. 누가 가지고 간 거 아니야?”
“일단 가 봐야겠다”
야식 회동을 잠시 중단하고 주차장으로 나가봤다. 대한민국의 양심은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했다. 아까 꺼낸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다행이었다.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며 중단됐던 야식 회동을 다시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