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탕수육 배달을 왔어요

21.08.01(주일)

by 어깨아빠

늦잠을 잤다. 온 가족이. 무려 9시 30분까지. 해가 긴 여름에 오히려 이렇게 늦잠을 자는 날이 종종 있다. 너무 더우니까 피곤한데 잘 때는 에어컨 때문에 시원해서 그런가. 아무튼 다들 늦게 일어난 덕분에 아침을 차리느라 바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는 방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고 나왔다. 다시 거실로 나온 아내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예배드리고 있는 아이들 등 뒤에서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거의 못 알아 들었지만 느낌과 핵심 단어로 의미를 파악했다.


‘어머니. 오신다고’


(내) 아빠가 서윤이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셨다면서 오후에 오신다고 했다는 거다. 손주들을 오랫동안 못 봐서 보고 싶다며 오시겠다는 부모님에게 차마 방역 수칙 위반이라 안 된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엄마와 아빠가 오시면서 점심을 사 온다고 하셨다. 아내와 나는 아침을 굶어서 엄청 배가 고팠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침을 먹기는 했지만 빵을 먹은 데다가 점심 먹을 시간도 많이 지나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빠아. 배고파여어. 점심은 왜 안 먹어여어?”

“아, 먹어야지. 배달 시켰어”

“뭐여어?”

“탕수육 배달 시켰어”


소윤이와 시윤이는 블럭을 가지고 놀며 탕수육을 기다렸다. 그 사이 서윤이는 낮잠을 재웠다. 처음에 들어가자고 했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아서 엄마랑 언니, 오빠한테 인사하라고 했더니 또 순순히 손을 흔들었고, 들어가서 눕히니 30초 만에 잠들었다.


서윤이를 재우고 나서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집안 정비에 힘썼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엄마와 아빠가 오셨다. 벨을 누르셨다.


“어? 소윤아, 시윤아. 탕수육 왔나 보다. 너네가 가서 열어줘”


소윤이와 시윤이는 빠르게 현관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둘 다 할아버지를 보고도 할아버지인 줄 몰랐다. 소윤이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혼자 나지막하게


“어, 이상하다. 신림동 할아버지랑 비슷하네”


라고 얘기하고는 곧바로 닮은 게 아니라 진짜 할아버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빠. 신림동 할아버지가 탕수육을 가지고 오셨어여”


그때까지도 완전히 상황 파악은 못한 눈치였다. 한 3초간 어리둥절하던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든 걸 이해하고 나서야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빠. 근데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도 돼여?”

“아. 안 되는 게 맞기는 한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는 건 우리가 오지 말라고 하실 수는 없잖아. 일단 우리는 잘 지키는 거고”


서윤이는 잠시 후 일어나서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웃는 건 물론이고 가서 안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할아버지의 기쁨이 제일 큰 듯했다. 움직임 하나하나, 소리 하나하나가 재롱이 되는 시기의 서윤이는, 뭐만 하면 모든 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랑 재밌게 놀았다. 이것저것 하다가 나중에는 보드게임을 했는데 소윤이는 할머니랑 할리갈리를, 시윤이는 할아버지랑 도블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점점 눈이 감겼다.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누웠다 일어날 거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엉덩이 아래쪽은 매트리스 아래로 떨어뜨렸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가 두어 번 떨어뜨리고 난 뒤에는 아예 매트리스 위로 올라와서 눈을 감았다.


중간에 아내가 들어와서 깼는데 옆에는 서윤이가 앉아 있었다. 잠결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서윤이가 슬며시 방으로 들어와서는 내 옆에 앉아서 내 휴대폰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다시 잠들었고 거의 2시간을 잤다.


“와, 여보 나 엄청 많이 잤지? 깨우지 그랬어”

“그냥 좀 푹 자라고”

“애들은?”

“어머님 아버님이랑 마트 갔어”

“애들 잘 놀았어?”

“그럼 잘 놀았지”


너무 개운했다. 소윤이,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도 데리고 가셔서 집에는 아내와 나밖에 없었다.


“여보. 신혼 때 많이 즐겼어야 했는데. 이러고 있으니까 꼭 신혼 같네”

“그러게. 그때 더 많이 놀걸”

“이럴 때 그냥 아무 부담 없이 바람도 쐬러 나가고”


아이들과 부모님은 꽤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함께 저녁도 먹고 평소에 비하면 늦은 시간에 떠나셨다. 아빠가 내일부터 휴가라 늦은 귀가에도 부담이 없어 보였다. 예전에는 주일에 집에 오시면 엄청 피곤해 하시고 얼른 가자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빠도 그렇고 장인어른도 그렇고. 서윤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실 때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서 안겼다. 이 심정은 아내만 모른다. 맨날 붙어 있는 아내는 절대 모른다.


함께 계실 때는 낮잠을 2시간이나 잘 정도로 자유롭고 좋았는데 가시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시간이 꽤 늦었다. 그냥 대충 씻겨서 재우고 싶었지만 일단 밖에 나갔다 오면 땀이 주루룩 흘러서 그러기가 힘들었다. 소윤이의 떡진 머리를 보니 더더욱. 어제도 샤워를 시켰는데 마치 며칠 샤워를 안 한 것처럼 뭔가 그래 보였다. 피곤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샤워를 감행했다.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냥 재우는 건 너무하다. 나는 맨날 샤워를 하면서.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커피를 사러 나갔다. 낮에 부모님이 계실 때 캡슐 커피를 내렸는데 아내가 들고 있던 컵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깨지는 바람에 커피를 못 마셨다. 하루라도 커피와 빵을 먹지 않으면 혓바닥에 돌기가 생기는 병에 걸린 것 같은 아내는, 곧장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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