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2(월)
아내와 시윤이는 또 오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렸는데도 아내는
“결과는 좋았습니다”
라고 표현했다. 과정이 힘들기는 했어도 ‘좋은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힘을 쓰느라 힘들었다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훈육이 그렇다. 좋은 과정이 있어도 기대처럼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는 있지만, 좋은 과정이 없는데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법은 없다. 제대로 된 훈육의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 힘든 이유가 이런 거다. 아내는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서 계속 기도하면서, 시윤이의 뉘우침을 기다렸다고 했다.
이런 날은 소윤이도 서윤이도 안쓰럽다. 원래 오후에 나가기로 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고,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사용되었다. 소윤이는 혹시라도 외출이 취소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시윤이를 타이르는데 열심을 내기도 했다. 서윤이는 거실에 남아 엄마를 찾으며 울다가 매트 위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한 손은 접힌 매트에 깔린 채로. 에어컨 바로 밑에서. 요즘에는 이런 상황에 소윤이가 서윤이 이불도 덮어주고 매트 사이에 손이 낀 걸 봤으면 빼주고 그랬을 텐데, 오늘은 소윤이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예정보다 아주 늦은 시간에 나가긴 했고, 대신 외출 시간은 엄청 짧아졌다.
어제 (내) 엄마, 아빠가 오시면서 빽순대볶음(백순대볶음이 표준어지만 ‘빽’이라고 발음해야 맛이 산다. 그러고 보니 백순대볶음이 표준어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을 사 오셨다. 유년기부터 결혼 전까지 신림동에서 보낸 나에게 ‘빽순대’는 특별한 음식이다. 정말 뜬금없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걸 파는 데도 별로 없고 설령 판다고 해도 우리 가족 중에는 나만 좋아하니까 쉽게 사 먹지도 않았을 거다. 며칠 전에도 갑자기 엄청 생각이 났는데 그걸 사 오신 거다. 아내는 오늘 저녁으로 그걸 먹자고 했다. 내 기억에 애들은 순대를 잘 안 먹었던 것 같았다. 아내는 순대 같은 건 아예 안 좋아하고. 나 혼자 좋자고 그걸 저녁으로 먹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여보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애들도 잘 안 먹었던 거 같은데”
“같이 먹으면 되지 뭐. 나도 괜찮아”
장시간 훈육을 비롯해 이미 그전에 숱하게 있었을 다양한 국지전(?), 집안일, 그리고 짧았지만 굵었을 외출로 인해 아내는 많이 지친 것 같았다. 순대든 뭐든 그냥 있는 걸로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뭘 먹을지 고민할 힘도 고민해서 만들어 낼 힘도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매일 애들 보는 맛에 퇴근했고 그건 서윤이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요즘은 유독 퇴근하는 맛이 짜릿하다. 문을 열면, 아니 문을 열기 전에 비밀번호를 누를 때부터 서윤이가 소리 지르는 게 들린다. 며칠 전부터 드문드문 ‘아빠’도 발음하기 시작했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면서 소리 지르듯 나를 부르고 웃으며 달려온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먼저 와서 안기고 뽀뽀하고, 그러고 나면 서윤이도 기다렸다가 안긴다. 그럼 정말 이런 생각이 든다.
‘와, 내가 너네를 위해서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
가장 마지막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아내가 온다.
“아이고, 고생했어 오늘도”
아직 일과가 남았지만, 일단 내가 왔으니 한숨 돌리라는 토닥임이다. 아내는 순대볶음을 만들려고 재료를 팬에 부어 놓았다. 내가 이어받았다. 볶으면서도 생각했다.
‘아, 이거 나만 잘 먹을 거 같은데’
그리고 아내는 나랑 통화하면서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여보. 양이 엄청 많더라”
역시나, 아내와 나의 도량 기준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가 보기엔 그냥 보통의 양이었다.
안타깝게도 순대볶음에 고추가 있었다. 볶기 전에 알았으면 뺐을 텐데 그냥 볶아 버리는 바람에 매운맛이 다 퍼졌다. 아주 은은하긴 했지만 소윤이나 시윤이는 버거워 할 것 같았다. 미리 말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모르고 먹는 거 같더니 잠시 후에는 느끼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아빠. 맛있는데 매워여”
“아빠아. 스으으읍. 저는 매운 거 먹는 게 힘들더라여어”
그래도 둘 다 배를 채울 만큼은 먹은 듯했다.
“여보. 생각보다 괜찮은데? 맛있는데?”
아내가 말은 그렇게 했다. 실제로는 얼마나 잘 먹었는지 보지 못했다. 서윤이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의심했더니 아내는 한사코
“진짜야. 나 많이 먹었어. 맛있게 먹었다니까”
라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오늘도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고 난 먼저 모임에 참여했다. 아내도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합류했다. 소윤이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가 나간다고 하니까 울었다고 했고. 소윤이도 참 일관성이 있다. 오히려 시윤이는 잠들기 전이라도 엄마나 아빠가 나간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아서 기다려 주지 않았고, 소윤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래서 대부분 기다려줬다. 그래서 우리 시윤이의 사랑의 그릇이 덜 채워졌나.
아내는 커피를 배달시켰다. 최소 배달 요금이 있어서 그 핑계로 나도 평일 밤에 커피를 한잔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