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은 아빠가 내고 뒤처리는 엄마가 하고

21.08.22(주일)

by 어깨아빠

어제 먹고 남은 어묵탕에 밥을 말아서 아침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어묵탕이 조금이었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묵 건더기라도 좀 있었는데 서윤이는 그마저도 없고 국물도 없었다. 서윤이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매일 분에 넘치게 잘 먹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서윤이는 거의 맨밥에 가까운 아침을 맛있게도 먹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옷을 고르며 이렇게 얘기했다.


“소윤아. 오늘은 새싹꿈나무에서 매직을 쓸까?”


예배를 마치고 2부 활동을 할 때 매직이나 펜을 쓰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그때마다 옷에 그걸 묻혀 왔다. 그렇다고 후줄근한 옷을 찾아서 입히기에는, 그래도 교회에 가는 거니까 그러지도 못하고.


“매직 안 묻게 조심해 봐”


아내의 바람과는 다르게, 예배를 마치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갔는데 소윤이의 베이지색 원피스 뒤쪽에 분홍빛 무언가가 물들어 있었다.


“소윤아. 이건 뭐야?”

“아, 이거 거품 물감이에여”

“아, 그렇구나. 이건 지워질까?”

“이거 선생님이 지워진다고 하시던데여”

“그래? 엄마가 보시면 또 슬퍼하시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내는 옷을 입힐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지, 덤덤했다.


“괜찮아 소윤아. 이거 집에 가서 지우면 돼”


역시 아내의 바람과는 다르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내는 2차, 3차 공정을 거쳐도 지워질지 안 지워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아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버리기에는 좀 아까운 옷이긴 하다. 소윤이한테도 잘 어울리고.


예배드리고, 밥 먹고 돌아오니 무척 졸렸다. 집에 오자마자 소파와 거실에 누웠다.


“아빠. 안 누워 있으면 안 돼여?”

“왜?”

“누워 있으면 또 잠들 것 같은데”

“아니야. 아빠 안 자”


바로 거짓말쟁이가 됐다. 거실에 대자로 누워서 코를 드릉드릉 골며 잤다. 깜빡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소란스러움에 깊이 잠들지는 않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어쨌든 잠들었다. 아내는 빨래를 하느라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아내는 건조기에서 꺼낸 옷들의 냄새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인을 알면 해결이라도 할 텐데, 원인을 모르니 해결도 못하고. 아무튼 그것 때문에 아내는 건조기 통 세척도 하고 그런다고 굉장히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보. 설거지는 내가 할게. 그냥 둬”


이 말을 하고 1시간 30분쯤 있다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블록을 가지고 노느라 나나 아내를 많이 찾지는 않았다. 서윤이도 뭐 간헐적으로 칭얼대기는 했지만 그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여보. 뭐 나가야 할 일은 없지?”

“어. 아까 장은 다 봤어”

“저녁에 애들 떡꼬치 해 줄까?”

“그럴까?”


예전부터 해주고 싶었다. 아내와 내가 가끔 아니 자주 시켜 먹는 떡볶이, 치킨 가게가 두 곳 있는데 모두 곁들임 음식으로 떡꼬치가 있다. 튀긴 떡과 향수를 일으키는 소스를 먹을 때마다 애들 생각이 났다.


‘그냥 떡 튀겨서 소스 만들고 버무려 주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니까 애들도 해 줘야겠다’


라고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다가 오늘 드디어 움직인 거다. 냉장고에 남은 부침개 반죽이 있다고 해서 그거랑 같이 저녁으로 줄 생각이었다. 떡볶이 떡을 살 겸 잠깐 외출도 했다. 서윤이가 잠들까 봐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서윤이는 오가는 내내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 잠들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떡꼬치와 부침개 만들기에 돌입했다. 사실 내가 해 주고 싶어서 그랬다. 아빠가 해 주는 주말의 특별식 같은 걸 기억에 남겨 주는 건 언제나 즐거우니까.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할 일이 될지도 몰랐다.


“자, 이제 나의 난장을 시작해 볼까”


기름을 쓰는 거라 온 주방에 기름 천지가 될 가능성이 컸다. 너그러운 아내는 나의 마음을 널리 이해하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여보. 이거 부침가루 부어야 되는 거야?”

“어, 야채만 썰어 놓은 거야”

“얼마나 해야 되지? 이 정도면 되나?”

“엄청 조금만 해도 돼. 생각보다. 물도 조금 붓고”

“이건 너무 조금만 넣었지?”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 물도 조금만 더 넣고”


내가 보기에는 걸쭉한 느낌이 전혀 없었지만 아내가 그렇다고 하니 아내의 말을 따랐다. 반죽, 부침 등의 기술이 들어가는 요리에는 자신이 없어서 아내의 지시를 잘 따르는 편이다. 일단 반죽만 만들어 놓고 떡꼬치를 준비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었다. 떡을 찬물에 조금 담가 놓기는 했는데 언 게 완전히 녹지는 않았다.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하고 달궈진 기름에 하나씩 투하했다. 지글지글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먹기 좋게 익어갔다. 다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넣으면 떡이 서로 들러붙어서 고생스럽다고 하길래, 여러 번 나눠서 튀겼다. 동시에 준비해야겠다는 계획은 참 허황된 생각이었다. 떡 튀기는 것만 해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그렇게 실속 없이 바쁘게 움직이던 찰나에 갑자기 떡을 튀기던 프라이팬에서 파바박 하더니 기름이 튀었다. 튀었다고 하기에는 약간의 폭발에 가까운, 바닥 여러 곳에 기름이 튀었을 정도였다. 내 손과 팔에도 튀었다. 깜짝 놀랐다.


“아우. 깜짝이야. 와 큰일 날뻔했다. 애들 여기 없어서 천만다행이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윤이나 시윤이, 서윤이도 옆에 와서 서성거리곤 했다. 기름이 있어서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면서 멀리 보낸 게 다행이었다. 아마 떡에 물기가 좀 남아서 그런 것 같다면서 아내가 남은 떡의 물기를 키친타월로 마저 닦아줬다. 졸려서 징징대는 서윤이를 안고.


부침개는 부침개대로 말썽이었다. 너무 질퍽했다. 부침개의 형상은 유지되지 않고 기괴한 음식으로 변해갔다. 너무 칭얼거리는 서윤이를 달래기 위해 서윤이만 먼저 밥을 먹였는데 가장 처음 부친 괴상한 부침개가 서윤이 몫이었다. 맛은 있었다. 모양과 질감이 이상할 뿐. 그 뒤로는 부침가루를 조금 더 넣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떡꼬치는 수월하게 진행이 됐다. 떡도 잘 튀겨지고, 소스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아내와 내가 배불리 먹을 만큼의 양은 아니었다.


“소윤아, 시윤아. 그래도 맛있지?”

“네, 엄청 맛있어여”


정말 잘 먹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간단하고 더 맛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내가 애들 씻기고 옷 갈아입히는 동안, 주방에서 내가 저질러 놓은 참혹한 현장을 수습했다. 아내가 애들 재우러 들어가고 나서 보니 애벌 설거지를 다 해 놔서 설거지가 무척 간단했다. 주방 정리도 거의 다 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나를 향한 배려의 마음이 컸겠지만, 완전히 나에게만 맡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중에 자기도 편하니까 그랬을 거다. 내가 기름을 가지고 난리를 피운 날에는 대체로 그러는 것 같다.


덕분에 애들 재우고 할 일이 많이 줄고, 퇴근도 빨라졌다. 내일이 월요일인 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래도 아직 2시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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