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3(월)
새벽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깊은 새벽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고 그 소리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깬 것 같았다. 어제 소윤이 옆에 누워서 잤는데 바닥에는 나와 서윤이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의 옆자리로 갔을 테고. 잠결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둘이 자꾸 엄마 옆에 눕겠다고 싸우면 둘 다 내려가라’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1시간 넘게 남았으면 왠지 다행스럽고 1시간도 채 안 남았으면 왠지 불안해진다. 그냥 ‘1시간이려니’하고 잠을 청하는 게 차라리 낫다. 다시 잠이 든다면.
얼마나 더 잤는지는 모르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꿈 한 편을 꾸다가 깼다.
“아빠하. 안녀헝”
소윤이가 누워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출근 준비를 다 마치고 집에서 나가려는데 소윤이가 급히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시윤아. 너도 얼른 나와서 아빠한테 인사해”
시윤이도 방에서 나왔다. 그때 시윤이의 표정이, 오늘 하루 종일 생각이 났다. 약간의 웃음을 띤 표정이었는데 반가움, 다행,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내가 나가려던 순간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 덕분에 소윤이, 시윤이와 출근 뽀뽀를 나누고 나왔다.
“아빠 나가면 방에 들어가서 다시 자? 알았지?”
“아빠. 다시 잠은 안 올 거 같아여. 그냥 누워 있을게여”
“그래, 알았어. 누워 있기라도 해”
아침에 아내와 잠깐 카톡을 나눈 것 말고는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 더 잤다고 하긴 했는데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졸음이 몰려왔다. 보통 저녁에 운전할 때는 별로 졸리지 않는데 오늘은 유독 그랬다. 날씨 탓인 것 같기도 했고 하루 종일 회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은 들어가면 더 애를 써서 애들을 대해야겠구나’
까딱 잘못하면 ‘피곤한 아빠를 건드리면 호랑이가 된다’라는 기억을 심어줄지도 모르니까.
이런 다짐이 없어도 상관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서윤이가 엄청 깔깔거리며 나를 맞아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윤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반갑게 맞아줬고. 아내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나는 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수척해 보였다.
세 녀석과 퇴근 의식을 치르고, 손을 씻고 소파에 앉자마자 소윤이가 내 등 뒤에 매달리며 업어달라고 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소윤이의 흥을 최대한 그대로 받기 위해 노력하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윤이를 업고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예상했던 대로 두 명의 대기자가 등장했다.
“서윤아. 너 먼저 해. 그다음에 오빠 할게”
사람 없는 놀이공원의 처량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내리자마자 또 줄 서고, 내리자마자 또 줄 서고를 반복했다. 한 서너 바퀴를 돌며 번갈아서 태워줬다.
“어우, 피곤하다. 너무 피곤하다”
시윤이가 저녁을 먹으며 몇 번이나 그렇게 얘기했다. 저녁 먹을 때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그 시간까지 버텼으니 안 졸리면 그게 이상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일 힘들어하는 건 아내였다. 피곤을 넘어 환자에 가까운 듯한 몸 상태였다.
“아빠 피곤해여?”
“어, 피곤하지”
“그럼 일찍 자면 안 돼여?”
“그래도. 할 일이 있으니까”
할 일, 많았다. 설거지도 있었고 빨래도 있었다. 빨래가 압권이었다. 아내의 그 힘든 표정과 축 처진 몸짓만 아니었다면 그냥 뒀을 텐데, 차마 그러기가 어려웠다. 양이 적었으면 차라리 아내에게 미뤘을 텐데, 양도 너무 많았다. 소파 밑에도 있었고 소파 위에도 있었다. 소파 위에 있는 건 이불 같은 내 옷으로 고이 덮여 있었다. 내 옷으로 뚜껑처럼 가려 놓았을 때는, 대체로 빨래 양이 많다. 그간 임상 분석을 통해 얻어낸 연구 결과다.
아내는 꽤 한참 있다가 나왔다. 잠들었다가 깨서 나왔다. 그때도 빨래가 남아 있었다.
“하아, 여보. 빨래 다 갰어? 그냥 두지. 여보가 갤 줄 몰랐네”
“많네?”
“많지. 이제 그냥 놔 둬”
“여보. 다 갰는데? 뭘 놔 둬?”
실제로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얼마든지 마무리를 할 만한 양이었지만 아내의 ‘그냥 놔 둬’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빨래개기의 영이 빠져나갔다. 그동안 갠 빨래가 에베레스트라면 남은 빨래는 동네 언덕이었는데, 그 언덕을 넘을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진짜 막 인상을 팍팍 쓸 정도로 단 무언가가 먹고 싶다. 자연과 천연의 단 맛이 아닌 화학과 공장의 해로운 단 맛이 너무 간절한데, 집에 그런 게 없다. 다행이다. 있었으면 다 아작났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