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4(화)
아내가 당근 거래하러 나왔다면서 전화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잠깐 카페라도 들렀다 가자고 해서 그럴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 그럼 되겠네”
“여보. 나 용돈 줘”
“어?”
“카페 가게 용돈 줘”
가정 경제 운영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아내에게 일임했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걸 ‘경제권을 줬다’ 혹은 ‘경제권을 쥐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경제’권’, 즉 권리 혹은 권력을 포함하는 말일 테다. 안타깝게도 아내에게는 그럴 권리와 권력이 없다. 오히려 빡빡한 재정 상황을 늘 관리해야 하는 스트레스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내도 나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긴 하지만.
아무튼 나도 매달 첫날이 되면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서 쓴다는 말이다. 용돈쟁이한테 용돈을 달라니. 아내는 얼마 전 내 생일을 보내면서 나에게 부수입이 생겼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내가 숨겼는데 알아차렸다는 말은 아니다. 내 통장이 곧 아내의 통장이고 아내의 통장이 곧 아내의 통장이다.
맨날 애들 먹는 거 보고 움찔해서 절제하지 말고 모두 양껏 먹으라고 넉넉히 보냈는데, 아내는 오늘도 선을 넘지 않게 시켰다. 가끔 아내 혼자 밤에 카페에 가서 시키는 것과 똑같은 양이었다. 그걸 소윤이, 시윤이하고 나눠 먹겠다니. 아마 아내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거다.
빵의 부족을 위안할 만한 일이 있긴 했다. 서윤이가 카페에 가는 길에 잠들 거라는 얘기였다. 아내는 카페에 도착해서 아이들 사진을 보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색연필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고.
“서윤이가 늦게 깼으면 좋겠네”
그 카톡을 보내고 정확히 20분 후에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 있는 ‘깬’ 서윤이 사진과 함께.
“^^…미간 보이죠?”
한 시간도 안 잤다고 했다. 이런 날 좀 오래 자지. 언니, 오빠 좀 편히 엄마랑 데이트 기분 내게. 그렇게 득달같이 일찍 깨다니. 나중에 저녁 먹을 때 소윤이가 말하길, 자기는 서윤이가 일찍 깨서 좀 시무룩했다고 했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내가 몇 시에 집에 돌아왔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늦은 오후까지 밖에 있었으니 저녁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뭐야?”
“오늘 저녁은 비빔국수랑 파전. 파전은 한살림 냉동 파전이야”
“아, 그래 알았어”
얼핏 들으면 간단하지만 애들은 매운 걸 못 먹으니 따로 양념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면 삶고 양념장 따로 만들고 이러는 게 은근히 번거롭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에 전까지 부치려면 더 손이 많이 갈 테고. 퇴근해서 보니 나의 큰 오해였다. 아이들은 가지와 고기를 볶은 반찬이었고 아내와 나는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는 비빔면이었다. 냉동전도 부치는 게 아니라 그냥 데워 먹는 거였고. 괜한 걱정이었다(비빔면과 냉동전 혹은 그걸 준비한 아내를 힐난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음을 밝힌다. 아내는 세 봉지를 삶았는데 나 혼자 거의 두 봉지 분량을 먹었다).
한창 자기가 먹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힘들게 하던 서윤이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기가 됐다. 숟가락 하나를 주고 밥그릇이나 식판도 일단 준다. 난 다른 숟가락을 들고 밥이나 반찬을 떠먹여 주면, 서윤이는 손으로 반찬을 집어먹는다. 자기 앞에 밥그릇과 숟가락이 있기만 하면 되는 듯하다. 가끔은
“서윤아. 이제 아빠 줘 봐. 아빠가 밥 떠 줄게”
하고 서윤이 손에 있는 숟가락을 받아서 먹여주고, 다시 서윤이에게 주고를 반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저녁 온라인 모임은 과학과 관련된 강의였는데 아이들도 같이 듣는 집이 많았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여보. 혹시 소윤이 안 자면 소윤이만 데리고 나갈까요?”
“그래”
소윤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소윤이에게 약간의 혜택을 주는 뜻으로 데리고 나왔다. 함께 들어도 전혀 무관한 오히려 유익한 내용이었다.
“소윤아. 이해가 좀 돼?”
“아니여”
모임이 모두 끝나고 자러 들어가야 하는데 엄마가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더니 엄청 서럽게 울었다. 아내는 자비를 베풀어서 딱 5분만 같이 누워있다 나오겠다고 했는데 한 30분 지나고 나왔다.
“여보. 잠들었어?”
“어후. 깜빡 잠들었네”
아내도 고생이다. 애들 키우느라 고생, 집안일하느라 고생, 머리만 대면 잠드는데 깨서 나오느라 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