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가족 여행 마지막 날

21.09.27(월)

by 어깨아빠

월요일인데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짜릿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여행의 여유와 정취에 흠뻑 젖었다. 요일 감각을 상실하고 여전히 어색하지만 조금 익숙해진 풍경을 만끽하며 잠에서 깼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원래 이곳에 살았던 아이들처럼 안과 밖을 드나들며 신나게 놀았다. 아쉽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2박 3일 여행의 묘미가 이런 거다. 뭔가 익숙해지면 떠나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너무나 아쉽지만, 다음 여행을 향한 기대를 더 진하게 만든다.


마지막 날 아침은 간단히 토스트를 먹기로 했다. 새삼 깨달았다. 입이 다섯이면 그 어떤 간단한 음식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걸. 식빵 한 봉지와 슬라이스 햄을 굽고 계란프라이도 했다. 거실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평상에서 먹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아침부터 음식 냄새를 맡고 온 파리들 덕분에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었지만, 이곳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니 감수했다.


소윤이는 여행 특전(?)으로 매일 청귤 에이드를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아내가 직접 담근 청귤청에 탄산수를 타서 주는데 소윤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다. 청귤 건더기까지 남김없이 다 먹는다. 시윤이는 탄산수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물에 타 준다. 맛있다고 먹기는 하는데 누나처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오늘 아침에도 소윤이는 청귤 에이드, 시윤이는 우유와 함께 토스트를 먹었다.


서윤이는 이제 식빵 따위는 잘 안 먹는다. 건방진 녀석. 처음 식빵을 먹을 때만 해도 처음 맛보는 밀가루 맛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더니. 더 자극적인 빵을 몇 번 접하고 나서는 식빵처럼 담백한 빵은 장난만 치고 잘 먹지 않는다. 안 먹는 건 상관없는데 자꾸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내놓으라고 떼를 쓰면, 그게 문제다. 오늘도 계란프라이를 더 대령하라고 호통을 쳤다. 그렇게 호통을 치다가도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하면 금방 또 사그라든다.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애가 뭔가 고집스러운 건 없다(하긴, 이런 걸 판단하기에 너무 어리긴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곧은 자세’를 얘기하면 모든 말과 행동, 태도를 멈추고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자세를 취하는 것도 신기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아내는 설거지, 난 숙소 정리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부터 방방 떴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둘이 계속 웃고 낄낄대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발소음 걱정 없이 지내는 게 뭐라고,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빠. 마당에 나가서 놀아도 돼여?”

“너네 나가면 서윤이도 따라 나간다고 할 텐데”

“우리가 잘 볼게여”

“그래, 알았어”


소윤이와 시윤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정말 ‘잘’ 보겠다는 각오가 있었을 거다. 나가기 전에는. 막상 나가서 놀다 보면 동생을 잊겠지만. 서윤이가 평상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떨어지는 상황만 아니면, 크게 위험할 건 없었다. 통유리라 밖이 한눈에 보이기도 했다.


“여보. 믿기지가 않네. 오늘이 끝이라니”


애들보다 아내와 내가 더 아쉬워했다. 역시 2박 3일은 너무 짧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차에 타기 전에 마당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서윤이가 협조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장은 남기기 위해 애를 써서 찍었다.


관광 없는 여행이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대신 마지막 날은 그래도 한 곳 정도는 가 보기로 했다. 양평의 대표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두물머리에 들르기로 했다. 평소에 듣기는 엄청 들었는데 가 본 건 처음이었다. 풍경이 좋긴 좋았다. 날씨도 아주 화창했다. 여행 내내 날씨가 계속 좋았다는 걸 다시 떠올렸다. 감사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도 이런 날씨를 허락받다니.


입구에 있는 안내 지도를 보니 산책로가 꽤 길게 이어진 듯했다. 흐르는 땀을 시원한 바람으로 식히며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걷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산책은커녕 입구에서 200미터도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렀다. 입구 쪽이 흙바닥이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아주 좋은 놀이터였다. 여기저기서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며 놀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면 같이 걷는 게 가능하지만, 서윤이가 문제였다.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모르겠는데 자기도 내려 달라고 벨트를 만지며 악을 썼다. 내려 주면 바로 순한 양이 되어서 모든 것을 녹일 듯한 미소를 날렸다. 산책은 못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서윤이도 넓은 곳에서 마음껏 뛰어다녔다.


그곳 근처의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백반집이었다. 직접 기른 재료로 반찬을 만들고 조미료 없이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먼저 갖다주신 밑반찬 중에 열무김치를 먹어 본 아내가 나에게 다소 흥분하며 얘기했다.


“여보. 열무김치 먹어 봐. 진짜 맛있다”


열무김치를 좋아하는 나에게 얼른 그 맛을 전해주고 싶은 아내의 마음이었다. 아내 말대로 감탄이 끊이지 않는 맛이었다. 다른 반찬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대표 반찬은 가자미구이였다. 생선구이가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여기는 생선구이도 특별히 더 맛있었다. 다만, 아내와 내가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생선은 다 좋은데 가시 발라 내는 작업이 너무 번거롭다. 애들 먹여야 하니 대충 발라내지도 못하고 엄청 세밀하고 자세히 봐야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가시를 발라 내기도 하니까 조금 대충 봐도 되지만, 서윤이는 아니다. 아내가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심정으로 신중하게 가시를 발랐다.


난 서윤이 옆에 앉아 시중을 들었다. 이 녀석이 밥은 안 먹고 생선만 집어먹고는 생선이 떨어지면 얼른 달라고 칭얼거렸다. 생선 채워주랴 밥 떠먹이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전투적으로 먹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퇴근시간과 겹치지 않도록 출발했더니 집까지 오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렸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오후라 너무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나가서 놀자고 했지만 아내가 막아줬다.


“소윤아, 시윤아. 집에 가면 일단 좀 쉬자. 아빠 내일 출근도 하셔야 되니까”


아내 말대로 집에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석 블록을 하는 동안 옆에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그렇게 오래 자지는 않고, 길게 졸았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다. 잠에서 깼더니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 오목할까여?”

“오목? 그래”


오목을 하면 오롯이 소윤이와의 시간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 둘, 특히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소윤이도 그걸 아니까 많이 참기도 하고, 제안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그건 또 소윤이 나름대로의 배려고 인내니까, 한 번씩은 소윤이의 마음을 살피는 차원에서 흔쾌히 소윤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할애한다.


저녁 먹고 난 뒤에는 온 가족이 잠시 집에서 나왔다. 명분은 ‘커피’였지만, 사실은 여행이 끝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소박한 외출이었다. 일부러 내가 출퇴근 할 때 타는 차(정상적으로 앉으면 아이 셋과 타기 어려운)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끝나가는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마지막 일탈(?)이었다.


“소윤아. 벌써 월요일이 됐네. 여행도 끝나고”

“아빠. 믿기지가 않아여. 우리가 여행 출발한 날이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소윤아, 사실 진짜 얼마 안 된 것도 맞긴 맞아.


“시윤아. 여행 좋았어?”

“네에. 너무 좋았어여. 아빠 내일도 휴가 내여어”


서윤이는 갑자기 ‘언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아내의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는데 거기에 있는 다른 언니를 보고 부르더니, 그 뒤로 계속 언니를 불러댔다.


“은니이이이”


한 번 부르면 한 열댓 번은 부른다. 계속. 특히 아빠와 언니를 부를 때 그렇다. 나도 소윤이도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고, 부를 때마다 다 대답을 해 준다. 그것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환한 웃음과 함께. 이게 막내의 자연 생성 권력이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나온 아내도 심경을 토로했다.


“여보. 벌써 끝이라니. 우리가 토스트를 먹은 게 오늘 아침이야? 하아. 믿기지가 않네”


그러게. 정말 믿기지가 않는 월요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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