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8(화)
추석 연휴가 끝났을 때는 ‘그래도 곧 여행이니까’라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여행이 끝나니 ‘정말 다 끝난’ 느낌이었다. 아내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만큼 힘들지는 않겠지만 여행을, 함께 있었던 아빠를 그리워했을 테고.
아내는 낮에 온라인 모임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과의 일상도 오랜만에 정상 궤도로 돌려놔야 했고. ‘연휴’와 ‘여행’의 관성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일상’의 범주로 끌어오는 건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도 은근히 애를 쏟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였는지 오후나 되어서야 아내와 연락이 닿았다.
“압빠아아아. 압빠아아아아. 압빠아아아아. 압빠아아아아. 압빠아아아아”
서윤이가 무한 반복으로 아빠를 외쳐댔다. 꽤 높은 음역대에서 까랑까랑하게 울리는 ‘압빠아아아’ 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운 일방적인 외침이지만, 그게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최대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다.
아내가 점심 먹는 아이들 사진을 보내면서
“배고프다”
는 메시지를 함께 보냈다. 쉴 새 없이 뭔가 하다가 부지런히 점심을 차려 주다 보면 정작 자기 밥 챙길 여유가 없는 날은 허다하다. 아내는 지인이 준 간편조리 육개장이라도 끓여 먹어야겠다고 했다. 그런 거 먹지 말고 반찬 하나를 놓고 먹더라도 집에 있는 걸로 챙겨 먹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현실이 어떤지 아니까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 그거라도 먹어”
뭐라도 먹는 게 굶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아내가 또 하나의 사진을 보냈다. 단출하게 밥 한 공기와 육개장 한 그릇이 놓인 식탁, 그리고 아내의 무릎에 앉아 있는 서윤이가 담긴 사진이었다.
“이거 먹기도 힘드네. 계속 와서 밥 달라고”
아내가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는 게 아니다. 못 먹는 거지. 서윤이는 자기 밥 실컷 먹고도 누가 뭘 먹으면 꼭 자기도 먹어야겠다며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러니 아내가 자기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애들 간식도 쉽게 못 주는 거다. 서윤이가 하도 난리를 치니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은 환대를 받으며 퇴근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을 먹으면서 ‘밤산책이 하고 싶은데 나가면 안 되냐’며 나를 공략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나 나가고 싶은지 아니까 그러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에 비해 내 몸은 너무 피곤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날씨 핑계를 댔다.
“산책? 아 산책? 비가 올 거 같은데”
“지금 비 와여?”
“아니, 지금은 안 오는데. 날씨가 흐려”
“그럼 비 오면 안 나가고 안 오면 나가면 안 돼여?”
“올 거 같은데”
“비 오면 우산 쓰면 되져”
이번에도 아내가 나섰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아빠도 너무 피곤하셔. 내일 상황이 되면 내일은 나가더라도 오늘은 아니야. 그러니까 오늘은 산책 얘기 그만하자 알았지?”
대신 밥 먹고 나를 내어 줬다. 밟으면 밟는 대로 오르면 오르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뼈로 뼈를 눌러서 진짜 아팠을 때만 빼고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물리적 가해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수용했다.
얘들아, 아빠도 최선을 다했다.
콧물 닦을 손수건까지 챙겨서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들어갔던 소윤이가 갑자기 다시 나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와서 또 뽀뽀를 했다. 들어가기 전에 뽀뽀를 했는데 다시 나와서 한 거다. 엄청 진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한테 뽀뽀하고 진하게 싶어서 나온 거에여. 아빠 잘 자여”
아빠를 무장해제 시키는 요령을 알고 있다. 소윤이가 이런 기술(?)을 언젠가는 어떤 외간 놈한테 쓴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쓰리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아예 나오지 못했다. 내가 자러 들어갈 때까지도 깨지 않고 그대로 쭉 잤다. 이런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내도 피곤하긴 엄청 피곤했나 보다. 아내와 시윤이가 매트리스에 누워 있어서 난 서윤이와 소윤이 사이에 누웠다. 딸과 딸 사이에 누워서 자는 게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새삼 감사했다. 딸이 둘이나 있고 거기에 아들까지 있다니. 거기에 첫째와 막내가 딸이라니.
이 맛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