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30(목)
아내와의 첫 소통으로, 두통의 정도를 물었다.
“여보. 머리는 좀 어때?”
“아직 좀 뻐근해”
어제랑 별 차이 없다는 말은 안 했으니 조금은 나아졌다는 뜻이고, 아직 ‘좀’ 뻐근하다고 했으니 엄청 심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아내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그렇게 느꼈다. 어제보다는 훨씬 생명력이 느껴지는 단어와 문장이 도착했다.
아내는 장모님께 간다고 했다. 장모님을 뵈러 가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중고 거래로 소윤이 신발을 샀는데 그 장소가 근처였다. 한편으로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거기 안 계셨으면 굳이 거기까지 가서 중고 거래를 하지 않았을 테고.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어서 빨리 와야 했다. 오후에 가서 오후에 와야 하는 다소 바쁜 일정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이 싸 주신 밥과 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나는 저녁을 함께 먹지 않았다. 온라인 모임이 독서 모임이었는데 책을 좀 덜 읽어서 그걸 읽어야 했다. 저녁까지 먹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반가운 아빠를 향해 이런저런 대화를 건넸지만 성실하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부지런히 밥을 먹고, 씻고 자러 들어갔다. 거의 대화도 못 나누고 스킨십도 없었다. 특히 서윤이는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다는 걸 한참 뒤에 깨달았다. 막 퇴근해서 안아주려고 했더니 장난치면서 도망갔다.
온라인 모임이 끝나고 아내와 앉아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배가 좀 차니 아이들이 고팠다. 평소에도 애들 재우고 나면 또 애들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최소량을 채우지 못한 느낌이었달까. 연휴와 여행을 연달아 보내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부쩍 많았던 덕분에 아이들이 요즘 나의 퇴근을 유독 애타게 기다린다고 하던데. 꼭 애들만 그러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더 갈급한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나는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아빠일 테지만, 나에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자녀들이니까. 막내를 낳고 나서야 좀 피부에 와닿는다. 지나가는 시간이 왜 그렇게 아깝고 아쉬운지.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자러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갔다 왔더니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안아 준다고 했더니 싫다며 엄마 품을 더 파고들었다. 안아 주는 게 아니라 안겨 달라는 사정이었는데. 아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니까 그제야 나에게 와서 쏙 안겼다. 하하. 이때의 뿌듯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시기까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에게 안겨서 울며 엄마를 찾던 소윤이, 시윤이하고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서윤이는 일단 엄마를 떠나 나에게 안기면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긴다.
셋이 들어가서 아내와 나는 매트리스에 눕고 서윤이는 자기 자리에 누웠다.
“서윤아. 엄마, 아빠 사이로 올래?”
서윤이는 어둠을 헤치고 아내와 나 사이에 누웠다. 잠이 좀 확 깼는지 바로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것도 서윤이만의 특징이다. 굳이 엄마 옆, 아빠 옆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기 편한 자리 찾아간다. 어디 있어도 엄마, 아빠, 언니, 오빠에게 사랑받는다는 걸 의심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다행히 아내의 두통도 완치(?)됐다. 오후쯤부터는 완전히 정상 상태로 회복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