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동생들

21.10.08(금)

by 어깨아빠

어제처럼, 퇴근하는 아빠를 보며 환호하는 서윤이의 모습을 찍어 보려고 동영상 촬영을 하며 문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어제 같은 반응은 없었다. 서윤이는 도어록 건전지가 다 돼서 울리는 알림 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멀뚱하게 서 있었다.


어제 다짐했던 것처럼 시윤이를 받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시윤이는 낮에 통화하다가 ‘아빠가 자기의 부름에 대답까지 하고도 자기 얘기는 안 듣고 서윤이를 불렀다’는 이유로 슬퍼하기도 했다. 바로 시윤이에게 사과하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간단히 넘어갔지만 시윤이의 요즘 심경을 대변하는 나름의 사건이 아닐까 싶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시윤이의 부름과 요구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서윤이가 아내와 나의 시선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빼앗을, 아니 독점하는 순간이 많을 때는.


시윤이를 받아주겠다고 굳게 다짐했더니 서윤이까지 달려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오빠가 하는 건 자기도 꼭 하겠다고 하는 건 물론이고, 아예 오빠는 하지 말라며 성질을 내고 밀기도 했다. 아무튼 업어 주기도 하고 깔려 주기도 하고 밟혀 주기도 하고 그랬다. 소윤이의 반응이 좀 신선했다. 보통은 자기도 해 달라며 끼어드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동생들이 아빠를 가지고 노는 걸 보고 재밌게 웃으며 말했다.


“얘네가 왜 이래. 아빠가 무슨 장난감이야”


마치 ‘니들이 아빠를 그렇게 힘들게 하니까 나는 알아서 빠진다’라는 느낌이었달까. 소윤이도 즐거워 하긴 했지만 끝까지 자기도 해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두 동생은 저녁 식탁에 앉기 직전까지 아빠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는 행보였다. 안 그래도 되는데.


소윤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 줬다. 시윤이는 요즘 아내나 나에게 아예 허락을 받고 손가락을 빤다. 일종의 양성화 정책이다. 엄마, 아빠 몰래 손을 빨지 말고 ‘빨고 싶으면 차라리 물어보고 떳떳하게 빨아라’는 취지다. 다행히도 양성화 정책 이후 시윤이가 손을 빠는 시간도 줄었고 몰래 빠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내나 나도 웬만하면 빨아도 된다고 한다. 어제도 시윤이는 자기 전에 아내에게 손가락을 빨아도 되냐고 물었고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시윤이가 소윤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는 거다.


“누나하. 나 머리카락 하나만 뽑아 줘허”


시윤이가 손가락을 빨 때 그냥 빠는 게 아니라 꼭 머리카락 한 올을 쥐고, 그걸로 콧구멍을 간지럽히면서 빤다(머리카락이 없으면 손가락을 빠는 맛이 없어서 빨지 못할 정도니, 매우 중요한 필수 도구다). 어제는 미처 머리카락을 구하지(?) 못했나 보다. 소윤이는 흔쾌히 자기 머리카락을 뽑아서 시윤이에게 줬다고 했다. 좀 요상하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현실 우애랄까.


저녁 먹고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없었던 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먹고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여전히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집에서 나왔다. 교회에 가야 했다. 짧았지만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충실하게 반응하고 나왔다.


교회에 다녀와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미 어제 아내가 ‘내일은 파전을 먹어야겠네’라고 얘기했다. ‘방금 배달이 왔나 보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배달은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온 복도에 냄새가 풍긴 이유가 있었다. 집 앞에 하얀 비닐봉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여보. 뭐야? 왜 안 가지고 들어갔어?”

“그냥. 귀찮아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귀찮음이었다. 금요일 밤이니까. 드디어 끝났으니까. 내가 전 먹을 상을 차리는 동안 아내는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배달이 완료된 전을 옮기는 건 귀찮으면 미룰 수 있지만, 세탁이 완료된 빨래를 옮기는 건 미루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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