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면

21.10.09(토)

by 어깨아빠

“아빠. 아빠는 왜 주말에는 아침을 안 먹고 커피만 먹어여?”


소윤이와 시윤이의 말대로 밥을 먹으면 될 텐데 굳이 밥을 거르고 커피를 홀짝 거린다. 배고픔을 호소하면서.


“여보. 냉동실에 뭐 먹을 거 없나?”


평일에도 아침은 안 먹다 보니 습관이 되기도 했고 주말 아침에는 최대한 늘어지고 싶어서 (애들은 챙겨 줘야 하니 챙겨 주고) 괜히 그러는 것도 있다. 덕분에 점심 때쯤 되면 무척 배가 고프다. 더군다나 오늘은 애들이 아침도 거의 점심처럼 늦게 먹어서 따로 점심도 안 먹게 됐다.


뭔가 하고 있었던 걸 못하게 했는지 아니면 뭔가 하고 싶다는 걸 안 된다고 했는지, 아무튼 자기를 제지하는 소윤이에게 서윤이가 느닷없이 혓바닥을 내밀며 메롱을 시전했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누가 봐도 언니를 조롱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내와 나도 살짝 놀랐다. 아내와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서윤이의 표현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표현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로 서윤이를 불러서 따끔하게 이야기를 했다. 물론 서윤이가 이야기를 이해하지는 못할 거다. 다만 분위기는 이해한다. 자기 말과 행동이 ‘무언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느낌만 받으면 된다. 아직까지는.


그러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이번에는 오빠가 그 대상이었다. 아까 언니에게 했던 것과 거의 똑같이 조롱의 혓바닥을 내보였다. 이번에는 아내가 서윤이에게 얘기했다. 18개월 아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조롱의 표정과 혀놀림이었다. 놀랍다. 새삼. 내가 요즘 서윤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서윤아. 제발 말 잘 들어. 아빠 너 혼내기 싫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훈육 없이 ‘자라는’ 아이는 없다는 걸 아니까 더 괴롭다. 서윤이를 훈육해야 하는 시기가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이. 아무튼 오늘의 ‘메롱’은 참 신선했다. 여러 의미로.


(내) 엄마의 생신이라 엄마, 아빠 집에 가야 했고 점심시간쯤 출발했다. 엄청난 허기짐과 함께. 나가면서 엄마에게 드릴 꽃다발도 찾고 점심 대신 먹을 꽈배기와 핫도그도 사고 봉투도 사고 커피도 사느라 엄청 오래 걸렸다.


“아빠. 이제 어디 더 안 들릴 거져?”

“어, 이제 다 됐어. 진짜 가자”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다소 미안했지만, 뭐 모두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제대로 출발하고 나서도 한 시간이나 더 걸려서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침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 줬다고 했다. 지난번에 동생네서 엄마, 아빠를 만났을 때 매우 무례하고 버릇없이 굴었던 본인들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며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된다’라는 걸, 진지하게 일러 줬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모르는 건 아니다. 알아도 풀어질 뿐.


아내의 사전 교육 덕분이었는지 그래도 이번에는 눈과 귀에 거슬릴 만큼 예의 없이 구는 게 없었다. 아내와 나의 바람은, 아내와 나의 눈이 없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서윤이는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벽을 허물었다. 할머니와의 벽은 원래 없었다. 할아버지에게만 조금 어색하게 굴었는데 금방 태도가 바뀌었다. 소윤이가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오지 않는 아이’였다면, 서윤이는 ‘잘 달래면 언젠가는 오는 아이’의 느낌이다. 덕분에 할아버지(내 아빠)가 녹았다.


저녁 먹고 걸어서 왕복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빵 가게에 다 함께 다녀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꽤 긴 시간이었는데도 힘들어하지 않고 잘 걸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어서 힘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엄청 까불고 촐싹대고 그러기는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업히고 이리저리 당기고. 서윤이는 한 시간 내내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서윤이는 가만히 멈춰 서지만 않으면 웬만해서는 내려 달라고 하지 않는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빵 가게에 다녀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10분 정도 늦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모임을 시작했다. 긴 산책 덕분이었는지 눈이 스르르 감겼다. 시윤이도 나처럼 피곤해 했다. 모임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서윤이는 바로 재웠다. 요즘 안 그래도 자기 싫어하는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는 두고 자기만 들어가서 자야 한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났나 보다. 오늘도 자기 싫다면서 많이 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윤이가 들어가고 나서 조금 더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와 함께. (내) 엄마, 아빠 집에 가면 꼭 할머니하고 잔다고 한다. 할머니가 바로 재우지 않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해 주고 놀아주니까 그렇다. 오늘도 방에 들어간 지 3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자지 않았다. 서윤이를 재우다 잠든 아내가 깨서 다시 나왔을 때도 여전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안 잤다.


“쟤네 아직도 안 자?”

“그러게”

“너무 심한데?”

“그러게”

“가서 한 번 말하고 올까?”

“그럴래?”


아내가 가서 ‘이제 그만 자라’고 말을 하고 나서도 한참 더 시끄러웠다. 사실 (내) 엄마가 안 재우니까 그런 거다. 거의 자정이 다 되도록 안 잤다. 다음날 상태는 물론이고 피곤해서 병날까 봐 걱정이긴 했는데, 또 할머니와 얼마나 즐거우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아내와 나의 바람은


‘할머니 이제 너무 늦었으니까 그만 자여. 그래야 내일도 놀져’


라고 하면서 스스로 절제하는 건데, 역시나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내일이 되면 ‘다음에 할머니 집에 오면 엄마, 아빠랑 자야 한다’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냥 말기로 했다.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아까 엄마, 아빠 등에 업힌 소윤이와 시윤이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저렇게 업힐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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