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보다 무서운 축구 후유증

21.10.16(토)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아주 이른 시간부터 깨서 울었다. 덕분에 잠을 제대로 설쳤다. 서윤이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 시간에 깨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소윤이와 시윤이도 일직 일어나서 숙면을 방해했다. 막 웃고 장난치고. 웃고 장난치는 소리는 괜찮았는데 서로 다투고 바닥에 쿵쿵대는 소리는 잠결에도 귀에 굉장히 거슬렸다.


백신 접종 2일차가 된 아내는 다행히 큰 이상 반응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후기를 들어 보면 하루 지나고 아픈 사람이 제일 많은 느낌이었는데, 아내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내는 일관되게 ‘기운이 조금 없는’ 상태라고 얘기했다. 주사를 맞은 오른팔은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뻐근해졌고.


아내는 겉모습만 보면 꼭 아픈 사람 같았다. 말과 행동에 힘이 하나도 없고 얼굴도 수척하고. 열이 나거나 통증이 있거나 이런 건 아니고, 계속 기운이 나지 않는 정도라고 했다. 다행이면서도 언제든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됐다.


“여보. 들어가서 좀 자”

“알았어. 그럼 잠깐 들어가서 누울게”


아내가 잠깐 눈을 붙이는 사이에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갰다. 서윤이는 빨래를 개는 나의 손을 붙잡더니


“떰떰. 떰떰”


이러면서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떰떰’은 서윤이가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 하는 말이다.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는 모르겠다. 서윤이는 책장에 있는 블록 상자를 열어 달라고 했다.


“블록? 블록 꺼내 달라고?”

“응”


서윤이가 선제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거실에 앉아 있다가 내 손을 잡아끌고 가서는 미끄럼틀을 꺼내 달라고 할 때도 있다. 눈에 보여서 꺼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놀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다급하게 나를 끌고 가는 게 신기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다른 걸 하며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와서 블록을 했다. 꺼내 달라고 한 건 서윤이였지만 언니와 오빠가 합석하자 서윤이는 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아, 서윤아. 그건 오빠가 써야 되는 거야아”

“서윤아. 그건 안 돼. 언니가 그거 써야 돼”


소윤이와 시윤이가 피해(?)를 보는 날이 훨씬 많다. 갑자기 난입해서 언니와 오빠의 창작물을 다 부수거나 괜히 언니, 오빠가 하고 있는 걸 가지고 가서 안 준다고 떼를 쓰거나.


점심에는 약속이 있었다. 지인의 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집이라 여행 온 것처럼 숯불을 피워서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랜만에 또래 친구들을 만나서 신이 났다. 어느덧 사귄 시간도 오랜 사이라 특히 소윤이에게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소윤이의 ‘진짜 웃음’을 여러 번 목격했다.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그런 게 아니어도 많이 까불거리긴 하지만. 서윤이는 거기서도 나를 열심히 불렀다.


“압빠아아아아아. 압빠아아아아악”


아내와 아이들은 더 남아 있었고 나만 혼자 먼저 나왔다. 몇 개월 만에 축구를 하러 갔다. 그동안 운동장 대관이 막혀 있다가 드디어 풀린 거다. 아내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거나 안 좋아지면 당연히 불참할 예정이었지만, 다행 아니 황송스럽게도 아내는 계속 비슷한 상태를 유지했다. 지인과의 만남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것도 조금 미안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드디어 축구라니. 아내는 나의 축구를 진심으로 지지해 줬다. 자기도 내가 몇 달 동안 축구를 못 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면서.


점심 약속이 잡히기 전에는 소윤이와 시윤이도 데리고 올까 생각도 했었는데,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너무 추워졌다. 해가 지고 나니 한겨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추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축구하러 가기 좋은 날은, 모임 금지 당하는 동안 다 지나갔다.


“여보. 어디야?”

“집. 좀 전에 왔어. 여보는? 끝났어?”

“어, 이제 가려고. 커피 사다 줄까?”

“좋지”


아내의 목소리는 잔뜩 지쳐 있었다. 수시로 아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계속 똑같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저녁 대신 간단히 요기만 했다고 했다) 잘 준비까지 끝내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고 나서도 아이들은 신나게 잘 놀았고 이별의 순간에도 큰 부침 없이, 전반적으로 괜찮게 보낸 듯했다. ‘괜찮게’라는 건 크게 속을 썩이거나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이들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아이들은 꽤 금방 잠들었고 아내와 나에게는 꽤 많은 밤 시간이 주어졌지만, 뭔가 보거나 특별한 걸 하지는 않았다. 아내가 많이 아픈 건 아니어도 아주 잔잔한 ‘기운 없음’ 상태가 계속됐다. 그야말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사람 같았다.


나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축구를 한 후유증이 생각보다 깊었다. 근래에 느껴 보지 못한 피로감이었다. 삭신이 다 쑤셨다. 아내는 먼저 자러 들어갔다. 나도 그때 같이 들어가서 자도 됐지만(그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아쉬워서 조금 더 소파에서 놀다가 들어갔다. 그마저도 졸다가 몇 번이나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누웠다.


백신 후유증보다 축구 후유증이 더 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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