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풀떼기 하나도 버거운 날

21.12.14(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자신의 오전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보. 나는 아주 쉽지 않은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음”


우선 아내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약간의 두통과 허리 통증이 아내를 살살 괴롭혔다. 거기에 아침부터 이불 빨래를 해야 할 일이 생겼고. 그 이불 빨래가 보통 일이 아니라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루의 체력을 다 쓴 듯, 지쳤던 것 같다. 그나마 아이들이 평소보다 더 힘들게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오전을 겨우 보내고 오후에는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시간이 흘렀을 뿐 피로와 고단함은 누적이 되었을 텐데 이때도 순탄하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를 찾지 못한 거다. 아내는 나에게도 전화를 해서 혹시 내 가방에 있는지 물어봤다. 물론 내 가방에는 없었다. 짐작 가는 곳 여기저기를 서로 얘기해 봤지만 아내가 이미 다 찾아본 곳이었다.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아내는 일단 택시를 타야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택시 잡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고 했다. 그때 불현듯 주일에 입었던 코트 주머니가 떠올랐다. 어제는 아내가 차를 쓰지 않았으니 주일에 쓴 게 마지막이었을 거고 그날따라 열쇠를 내가 가지고 있었다.


“혹시 코트? 주일에 코트 입었잖아”

“집에 다시 가 봐야겠다”

“코트도 찾아봤어?”

“아니 찾아보려고”


그러고 나서 한 3분 후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코트에 있다”

“다행이네”


나중에 들어 보니, 택시 잡으러 나갔을 때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못 가겠다’라고 연락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다행히(?) 그때가 최고점일 때라 그 뒤로는 조금씩 나아졌다고 했다.


나아졌다는 게 뭐 갑자기 힘이 솟고 없던 체력이 생겼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해 질 녘, 퇴근할 무렵에는 아내와 나의 체력이 모두 고갈될 즘이라 다들 힘들다. 심지어 소윤이와 시윤이도 졸리고 피곤할 때가 많다. 재회의 기쁨, 한 식탁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시간이다.


오늘은 유난히 퇴근 이후의 순간순간이 고달프게 느껴졌다. 괜히 ‘내 한 몸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자마자 아내는 어떤 상태인지 살피는 것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질문에 답하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도 모두 버겁게 느껴졌다. 배고픔을 참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얼른 저녁을 줘야 하는데 아직 한창 준비하는 스스로와 이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를 보는 것도 힘겨웠다.


기쁨과 즐거움의 저녁 식탁이라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유독 그랬다는 말이다. 몸이 피곤했던 건지 마음이 고단했던 건지 아무튼 모든 상황이 버겁게 느껴졌다. 특히 저녁 다 먹고 서윤이가 바닥에 잔뜩 흘려 놓은 잔해를 물티슈로 닦아내며 치울 때 절정이었다. 아내는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반복하는 일이다. 밥풀 주울 때, 빨래 갤 때, 청소할 때 아내도 한 번씩 ‘이걸 언제까지 해아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내도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여보.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라고 물어봤다. 하긴 그렇게 티를 팍팍 냈으니.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


라고 대답하고 회피했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는데 그것도 참여하기가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목장 모임을 하면서 마음이 풀리길 바라기도 했다. 다행히 나의 바람대로 목장 모임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뭔가 쓸쓸한 마음은 있었지만 아침이 되면 사라질, 잠시 짙어진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보통 나에게 마실 거냐고 물어보는데 오늘은 물어보지 않고 주문을 했다. 아내도 나처럼 ‘커피 한 잔 마시고 힘내’라는 의미를 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적절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자려고 누웠는데 아내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뭐라고 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아이고, 우리 여보’ 이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안쓰러운 마음을 담은 손길이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게 더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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