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의 대가는 기름, 웃음의 대가는 시간

21.12.19(주일)

by 어깨아빠

오랜만에 예배 시간 내내 아내를 보지 못했다. 서윤이가 한동안 예배 시간만 되면 알아서 잠들더니 요즘은 잘 안 그런다. 오늘도 유모차에 앉았다가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건 괜찮은데 마스크가 문제다. 이제 말귀도 어느 정도 알아듣고 때가 되었으니 마스크 쓰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자꾸 마스크를 벗으려고 한다. 답답해서 그런 게 아니다. 손가락을 못 빨아서 그런 거다.


아내와 내가 나름대로 서윤이에게 알려 주고 있는 규칙은, 손가락을 빨고 싶으면 유모차에 앉고(대신 마스크는 안 씌움) 유모차에 앉기 싫으면 마스크를 쓰고 내려오라(대신 손가락을 못 빨고)는 거다. 안타깝게도 서윤이가 원하는 건, 유모차에서 내려서 엄마나 아빠에게 안겨 손가락을 빨다 잠드는 거고.


몇 번을 태웠다 내렸다 하면서 알려 줬지만, 엄마와 아빠 품에서 손가락을 빨고 싶은 서윤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두어 번 안고 나갔다. 밖에서 차분하게 얘기하면 또 알아듣고 수긍한다.


“서윤아. 손가락 빨고 싶어?”

“네에”

“그럼 유모차에 앉으면 돼. 알았지?”

“네에”


막상 들어가면 마음이 바뀌는 건지 다시 원래대로다. 아내도 한두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마지막에 나가서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문밖 로비에 있나 싶어서 나가 봤는데 안 보였다. 아예 자모실로 갔다고 생각했다.


예배가 끝나고 자모실로 갔는데 아내와 서윤이가 없었다. 한 층 더 올라가서 교회 입구 로비에 갔더니 거기 있었다.


“여보”

“어. 여보. 계속 여기 있었어?”

“어, 너무 힘들다”


서윤이는 너무나 해맑은 표정으로 날 반가워했다. 계속 아빠를 찾았다고 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오늘과 비슷한 난항이 예상된다.


점심은 집에 와서 먹었다. 또 고기였다. 너무 극단적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침 집에 고기가 있는 걸 안 먹고 둘 수는 없으니 부지런히 먹고 있다. 오늘은 삼겹살이라 기름이 더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아내의 본능적인 불편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점심을 먹고 아내가 서윤이를 한 번 더 재우러 들어간 사이에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사실 아내가 들어가고 나서 나도 소파에 앉아 한참을 꾸벅꾸벅 졸았다. 오죽하면 소윤이가 나에게 시간을 얘기해 주며


“아빠. 세시 넘었어여. 그러다 축구 늦는다여”


라며 깨워줬다. 그 와중에 계속 설거지 생각이 났다.


‘아, 저거 해 놓고 가야 되는데’


내가 잘못한 건 없다. 죄라면 기름기를 많이 머금은 삼겹살에게 있겠지. 아무리 조심해서 구워도 튀는 기름을 내 몸으로 받지 않는 이상은 막기 어려운 결과고. 그래도 왠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릇이라도 열심히 닦았다. 그릇에 기름이 많이 묻었을 때는 아내가 나의 설거지를 ‘성에 차지 않아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나름대로 꼼꼼히 했는데, 모르겠다.


축구 시작 시간이 다 되도록 설거지를 했다. 서윤이는 물론이고 아내도 그때까지 안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식탁에서 뭔가 만들며 놀고 있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제 나가볼게. 엄마랑 서윤이 아마 금방 깨서 나올 거 같으니까 아빠 나가고 나서 너희가 먼저 깨우지 말고. 알았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당부를 하고 집에서 나왔다. 나중에 들어 보니 서윤이는 먼저 깨서 나왔는데 아내는 그 뒤로도 좀 더 잤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서윤이에게 책도 읽어 주고 잘 놀아줬다고 했다. 호시탐탐 엄마를 깨울 기회만 노리던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동생을 봐 주는 언니, 오빠가 됐는지 새삼 기특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했다. 비록 짧은 출근이긴 했지만 어쨌든 어제도 시간을 많이 못 보냈고 오늘도 축구한답시고 나갔다 왔고. 아내에게 넌지시 ‘저녁 먹고 나갔다 올까’라는 뜻을 던졌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너무 힘들고 피곤한 모양이었다. 방향을 바꿔서 집 안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소윤아. 아빠랑 오목 둘까?”

“진짜여? 좋아여”


아내가 한마디를 보탰다.


“여보. 주일 저녁에는 재우는 시간에 굉장히 관대하네?”


아내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이미 하기로 했으니 즐겁게 오목을 시작했다. 소윤이는 항상 오목을 두고 싶어 하지만 오목은 시윤이와 함께 할 수 없는 거라, 본의 아니게 아빠를 독점(?)하게 되니 참을 때가 많다. 내가 가르친 태도지만 그래도 늘 안쓰럽긴 하다. 이렇게 한 번씩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면 무척 좋아한다. 소윤이와 세 번의 대국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한 판을 졌다. 일부러 봐 준 게 아니라 정말로 졌다.


시윤이가 하고 싶은 것도 했다. 도블(보드게임)을 했다. 대신 이건 다 함께 했다. 시윤이에게도 그게 더 재밌다. 처음에는 나와 아이들만 하다가 나중에는 아내도 합류해서 같이 하고, 마지막에는 팀을 나눠서도 했다. 게임을 하면서 모두 엄청 웃었다. 주말의 마무리로 아주 바람직한 장면이었다. ‘자기만 빼놓고 뭘 그렇게 재밌는 걸 하나’라고 생각하며 얼마든지 훼방을 놓을 수 있었는데 기분 좋게 기다려준 서윤이의 공도 매우 컸다.


물론 웃음의 대가로 시간을 바쳤다. 눕는 시간이 늦어졌고 아내도 쏟아지는 피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다(가 한참 있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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