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막내

21.12.20(월)

by 어깨아빠

아내와 주로 통화하는 시간이 있다. 업무 시작 전이나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무렵.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통화하는 시간을 추려 보면 아마 대부분 그 시간일 거다. 가끔 의외의 시간에 전화가 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거의 서윤이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아빠아아”

“어, 서윤아”

“아빠아아아”

“응”

“아빠아아아”

“어, 서윤아”

“네?”

“서윤아. 뭐해?”

“암마가아아”


서윤이가 아빠에게 전화를 해 달라고 요구할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막상 통화가 되면 아직은 서로의 이름만 부르다 끝날 때가 많지만. 서윤이가 아빠를 그리워하고 아빠와 통화도 하고 싶어 하는 건 참 흐뭇한 일이다.


서윤이의 뜬금없는 전화가 한두 번 정도 오기는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아내와 연락이 잘 안되다가 퇴근할 때쯤 되어서야 메시지가 왔다. 내가 보내 놓은 메시지에 늦은 답장을 한 거였다.


“여보. 잘 지내고 있나요”

“봉봉. 잘 지내고 있습니당”


그러고 나서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에는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쯤이야?”

“나? 음, 좀 전에 쿠팡 지났네”

“아, 그래? 알았어”


잘 지내고 있다는 메시지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오늘 너무 힘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우리 집 불이 꺼져 있었다. ‘커튼을 쳐서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낮에 장모님이 오셨고 잠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던 거다. 아내의 목소리에 힘이 없던 건 서윤이 쫓아다니느라 지쳐서 그런 거였다. 서윤이는 마치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했겠냐’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나를 반기며 내 품에 안겼다. 아내는 혀를 내두르며


“여보. 이제 서윤이랑 그런 데는 못 가겠어. 어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내는 힘들어서 그랬는지 정말 배가 안 고팠는지 저녁을 거의 안 먹었다.


저녁은 굶을지언정 커피는 거를 수 없다는 듯,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면서 나에게 커피를 마실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다. 흔쾌히 아내의 제안을 수락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 때 배달기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 집에 안 계신가요?”

“아니요. 그냥 앞에 두고 가시면 돼요”

“아, 저번에 집 앞에 두고 갔더니 왜 말없이 두고 갔냐고 하신 분이 계셔서”

“아, 괜찮아요. 그냥 두고 가시면 됩니다”


샤워하고 나와서 들이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이 유독 일품이었다. 정작 커피를 더 갈망하던 아내는 애들 재우다 잠들었는지 소식이 없었다. 커피가 녹는 게 아쉬워서 깨울까 말까 고민했는데 깨우지 않았다. 사실 요즘은 거의 안 깨운다. 아내에게는 자는 게 남는 것 같아서. 그래도 아내는 커피의 맛이 아직 온전할 때 다시 나왔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오늘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여줬다. 서윤이 사진이 나올 때마다 오늘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토로했는데 거기에 원망이나 힐난의 마음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와중에 이 녀석이 얼마나 귀여웠는지를 전하기 위해 더 애를 쓰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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