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9(수)
처치홈스쿨이 방학이라 아내의 굵직한 일정이 없는 기간이다. 놀기 위해서 만나는 모임이 아닌 데다가 아내가 선생님의 역할도 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아이 셋과 함께 움직여야 하고. 여러모로 육체와 정신의 부담을 야기하는(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어도 노력과 수고는 필요한 법이니까) 시간이 잠시 사라졌으니 다소 여유가 생긴 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육아인’이라는 아내의 역할은 여전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고단함도 여전히 존재한다.
“고단쓰. 셋 씻기기만 했는데”
아내는 오후의 끝자락 즈음에 마치 신음하듯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세 녀석 모두 샤워를 시켜줬다고 했다. ‘씻기는’ 행위는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여러 부속 행위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만만하지 않은 시간이다. 게다가 진짜 ‘씻기기만’ 했을 리 없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아내는 작고 큰 여러 가지 일을 해냈을 거다.
이틀 내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던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은 잠깐 바깥공기를 마셨다. 그래봐야 잠깐 자연드림에 장 보러 다녀오는 거였다. 그것도 아내가 일부러, 굳이 기회를 만든 거다. 스스로도 불쌍하고 아이들도 불쌍하고 그러니까.
아내는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자유부인’을 위해 나가는 건 왠지 잘 안되지만 누군가를 만나야 하면 강제로라도 나가야 하니까. 그 참에 잠시나마 분리도 되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아내가 미리 이야기를 해서 충격파가 거의 없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내가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나갔다. 덕분에 서윤이도 이별의 충격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얼떨결에 엄마를 웃으며 보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는 아이들을 차례대로 씻겼다. ‘혼자 하는 연습’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미루지 않고 다 내가 했다. 책도 읽어줬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금방 잠들었는데 소윤이가 좀 오래 걸렸다. 오늘은 소윤이가 잠들기 전에 나오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기다렸다. 그랬더니 방에 1시간을 넘게 누워 있었다. 셋 모두 잠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때였다.
미리 준비한 선물과 어제 소윤이가 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단순한 친목이나 친교를 위한 만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누군가를 만나기에 ‘저녁 9시까지’는 촉박하기 그지없는 시간이긴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제로 만남을 파한 아내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친한 친구와 통화하며 조금이나마 귀가를 미루는 것으로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