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31(금)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까딱하면 늦을지도 모르는, 꽉 채운 시간에 알람을 맞췄다. 마지막 날이니까. 역시나 알람과 상관없이 원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졌다. 한 5분 정도 일어날지 말지 고민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 날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또 역시나 꽉 채운 알람 시간 전에 아이들이 깼다. 아내도 아이들도 놀랐다.
“여보. 지금 7시 30분이야”
“어, 일부러 알람 안 맞췄어”
소윤이도 아빠가 늦을까 봐 수시로 시간을 말해줬다.
“아빠. 이제 거의 8시 다 됐다여”
“어, 알았어”
“아빠. 안 늦어여?”
“늦어도 되지 뭐. 하루쯤은”
시윤이는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아빠. 왠지 오늘 회사 안 나가시는 거 같은데?”
“아니야. 아빠 오늘은 출근해”
“에이. 장난치는 거 같은데?”
기대를 동반한 헛물이었다. 내가 작은방에 가서 겉옷을 걸칠 때까지도 시윤이는 김칫국 사발을 놓지 못했다. 현관에서 신발 신는 걸 보고 나서야 ‘진짜 출근하시나?’하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께 간다고 했다. 거기 있다가 오늘도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러 가야 했다. 대신 오늘은 장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아내만 다녀온다고 했다. 덕분에 아내는 무척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진솔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마지막 날이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났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만남을 끝내고 다시 장모님께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올 때까지 2시간 정도를 혼자 있었다. 그냥 무덤덤하게 있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는데 단 게 먹고 싶어서 여기저기를 뒤졌다. 아이들이 교회에 가서 받아 온 건데 양이 너무 많으니 일단 우리(아내와 나)가 보관하겠다며 여기저기 박아 놓은 간식을 찾아서 먹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수련회에서 학생들이 싸 가지고 온 어른의 음료를 압수해서 밤에 잔치를 벌이는 선생님처럼(아, 실제로 본 적은 없고 그런 유언비어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여러 사람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느라 한참 시간을 썼다.
아직 새해 인사를 보내고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왔다. 혼자 있는 게 심심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반가웠다. 이러다 정말 ‘젖은 낙엽’처럼 아내와 아이들에게 착 달라붙는 중년의 남성이 되는 건 아닐까 살짝 두렵기도 하다.
송구영신 예배에 가야 해서 시간이 아주 많았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나서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도 하고 우리 가족끼리 간단하게 한 해를 정리하는 예배도 드렸다. 각자 뭐가 감사했는지 나눴다. 다 비슷했다. 각자의 일상이 서로의 일상일 때가 대부분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평범한 일상이 감사 그 자체라는 걸 나의 자녀들이 최대한 빠르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종종 아니 자주 흔들린다. 돌아보면 감사 뿐인데 그 순간에는 뭐가 그렇게 마음이 박했는지 싶다. 사실 마땅히 불평할만한 걸 찾아서 쓰라고 해도 별로 쓸 게 없다.
아이와 함께 드리는 가정 예배는 짧게 끝내는 게 은혜라고 했거늘, 오늘도 이 끓는 마음을 전하다 보니 다소 길어졌다. 아내가 반쯤 감기고 충혈된 눈으로 힘겹게 버티는 게 보였다.
소윤이 말대로 평소라면 금요철야예배가 끝나는 시간에 집에서 출발했다. 예상대로 서윤이는 예배가 시작되자마자 유모차에 앉더니 이내 잠들었다. 시윤이는 좀 버티나 싶더니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곯아떨어졌다. 소윤이는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조금의 피곤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보다 더 쌩쌩했다. 그 덕분에 소윤이는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자정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함께했다.
“우와, 소윤아. 8살 됐네? 축하해”
어제 아침에 아내가 영상 하나를 보내줬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뒹구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귀엽다는 이야기를 차례대로 하기도 했는데 소윤이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아닌데. 난 이제 안 귀여운 거 같은데?”
소윤이는 모를 거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도 엄마와 아빠의 눈에는 여전히 귀여운 순간이 천지 삐까리라는 걸.
예배가 끝나고 시윤이를 차까지 안고 가려고 했는데 마침 시윤이가 깼다. 시윤이에게도 늦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시윤아. 6살 됐네? 축하해”
아내와 나는 축하보다는 탄식이 담긴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보. 벌써 서른여덟이야?”
“그러게. 시간 빠르네”
“나도 서른여섯이다. 흑흑”
그냥 웃자고 주고받은 농담이었고, 우리의 나눔처럼 다섯 식구 모두 아무 탈 없이 평범하게 보내서 감사한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