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1(토)
서윤이가 깊은 새벽부터 깨서 울고 칭얼거렸다. 그저 자다 깨서 우는 잠투정이 아닌,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의 울음이긴 했지만 잠에 취했을 때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서윤이의 울음이 그저 단순한 잠투정이 아니었다는 건, 아침에 알게 됐다. 서윤이가 아주 짧은 시간에 서너 번을 토했다. 열은 없었다. 토 냄새도 안 나고 소화도 안 된 채로 먹은 게 그대로 다시 넘어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처음 토했을 때는 그냥 ‘몸이 조금 안 좋은가’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이 토하니까 걱정이 됐다. 공휴일이라 평소에 다니는 소아과는 휴진이었다. 집 근처의 문을 연 소아과를 찾아서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대기 중에 토함”
병원에 간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소아과 선생님은 청진을 해 보시고는, 장 운동 소리가 빠르지 않은 걸로 봐서는 장염이라기보다는 위나 소화기 쪽 문제일 것 같다고 하셨다고 했다. 약도 그쪽으로 처방을 해 주셨다. 전염성이 워낙 강하니 소윤이, 시윤이에게 옮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한 집에서 사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최대한 조심하긴 했다. 언니와 오빠는 맛있게 떡국을 먹고 한 살 더 먹은 걸 자축했는데 서윤이는 새해 첫날부터 잘 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게워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새해 선물도 줬다. 시윤이는 양말, 소윤이는 다이어리. 포장은 못하고 아침에 급히 쪽지를 써서 아이들이 보지 않을 때 식탁 위에 꺼내놨다.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고 소윤이는 역시나 은근하게 좋아 보였다. 시윤이는 좋은지 싫은지 티가 많이 나는 편이고 소윤이는 싫은 것과 좋은 것을 향한 반응이 비슷한 편이다. 물론 부모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다. 시윤이는 누가 봐도 마음에 드는 듯 1부터 7까지 숫자가 쓰인 일곱 켤레의 양말을 두고 뭘 신을 건지 고민했다.
시윤이는 공원에 가고 싶어 했다. 넓은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시윤이 스스로도 자전거를 타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얘기했다. 그만큼 자전거 타기가 진심으로 고팠나 보다. 가뜩이나 날씨도 추워서 움츠러드는데 아침부터 서윤이 덕분에 쪼그라드는 기운이 가득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상황을 이해하긴 했다. 야외는 고사하고 집이 아닌 어디든, 그게 실내라도 상관없으니 나가고 싶어 했다. 온 가족이 적당한 장소를 고민해 봤지만 떠오르는 건 카페뿐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이는 차에 타면 잘 거 같거든? 그럼 우리 카페에 앉아서 소윤이, 시윤이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다 올까?”
소윤이와 시윤이도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윤이 상태가 약간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아예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건 아니었다. 또 소윤이와 시윤이를 향한 측은한 마음도 컸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평소보다 더 많이 잤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케이크와 빵, 코코아까지 먹으며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바로 집에 가는 건 아쉽다면서 어디라도 들렀다 가자고 했다. 카페가 아닌 실내 공간 중에 그나마 갈 만한 곳은 마트였다. 마침 마트에 가야 하기도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걸 사고 집에 가서 불고기를 해 먹기로 했다.
머리로 계획을 세울 때는 아주 간단한 일정이었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시간과 체력을 잡아먹는 일정이 됐다. 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여보. 지금 몇 시지?”
“지금? 6시 30분?”
“아 진짜? 벌써 그렇게 됐어?”
“그러게”
“집에 가서 밥 먹일 생각하니 막막하네”
아내 표현대로 막막했다. 언제 밥 차리고 불고기 만들어서 먹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아주 좋은 생각을 해냈다. 며칠 전에 소윤이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었고 아내와 나는 1월 1일(오늘)에 새해 기념(?)으로 피자를 한 번 시켜 먹자고 했었다. 아내가 그걸 기억하고는 피자는 어떠냐고 물었다. 어떻긴 고민할 필요가 없지. 마트에서 나오면서 피자를 주문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러서 찾았다.
오늘도 시윤이가 아주 잘 먹었다. 넘을 수 없는 벽인 아빠(나)를 제외하고는 역시나 가장 많이 먹었다. 먹으면서도 ‘아직 배가 덜 찼다’라고 말하는 시윤이에게
“시윤아. 배부르면 그만 먹어. 너무 배부를 때까지 먹는 건 좋은 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여보는 아직 더 먹을 수 있냐’며 놀라는 아내에게 ‘어, 얼마든지’라고 말하는 내가 할 소리인가 싶어서. 어떤 느낌이라는 것에 근거해 판단해 보자면 소윤이는 아내의 식습관과 양을 닮았고, 시윤이는 나를 닮았다. 둘 다 아내를 따라갔으면 좋으련만. 서윤이는 뜨거운 물에 밥을 풀어서 줬는데 잘 먹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영화를 시청했다. 한참 절정을 향해 가는 순간에 방 문이 열리고 소윤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서윤이 토 했어여”
아내와 나는 놀라서 방으로 들어갔고 서윤이는 토를 뱉어내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수습을 하고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얼마 안 돼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좀 도와줘”
들어가 보니 서윤이가 또 토를 했는데 이전의 토와는 다르게 냄새가 많이 났다. 너무 토하니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다른 해결책이나 대책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건가. 금방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피자 먹기 직전에 서윤이가 똥을 싸서 씻겼는데 물이 가득한 변이었다. 장염이거나 그와 비슷한 무엇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둘이 뭔가를 먹고 체한 건지 아니면 혹시나 목에 뭐가 걸렸는지 추측만 하다가 뭔가 확실한 원인을 찾은 거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후련한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또 토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난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영화를 끄고 나머지 정리를 했다. 서윤이가 내일은 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