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8(토)
서윤이는 다행히 어제와는 또 달랐다. 훨씬 생기가 돌고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쳤다. 점점 더 원래(?)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아내와 내가 똑같이 느꼈으니 착각은 아닌 듯했다. 다만 짜증은 여전히 많았다. 그것도 아내와 내가 비슷하게 느꼈다. 작은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여전히 쫄보인 나는 훈육 따위를 생각할 마음이 없었다. 회복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놀러 오시라고 했다. 아내나 나 못지않게 걱정을 하셨을 거고 아마 서윤이가 엄청 보고 싶으셨을 거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말씀드리지 않았어도 오셨을지도 모르고. 서윤이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미소를 지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점심시간쯤 오셔서 함께 점심을 드셨다. 서윤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걸 보며 꺄악꺄악 소리를 지르며 반겼다. 들어오는 사람 들어올 맛 나게 하는 찰진 반응이었다.
서윤이는 무엇보다 밥을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똥도 점점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나의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어제보다는 덜 불안한 것 같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커피도 사고 이불도 찾으러 (갑작스러운 토 세례로 생산된 이불 빨래를,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선생님이 가지고 가서 빨아주셨다) 나갔다 왔다. 아내와 나만. 서윤이를 떨어뜨려 놓고 나왔다는 건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얘기였다.
잠깐 커피 사러 나갔다 온다고 했는데 의외로 여기저기 들르다 보니 한참 걸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연하고 서윤이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놀고 있었다. 큰일을 겪고 난 뒤라 그런지 사소한 것도 감사하고 새로웠다. 아내와 나는 오늘도
“정말 꿈같다. 꿈같아”
병원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은 건지 아니면 멀쩡하게 보내는 지금이 꿈같은 건지. 아무튼 생각보다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서윤이의 모습에, 우리의 일상에 다소 얼떨떨하면서도 감사하고, 불안하고 그랬다. 아, 불안은 나만 느끼는 듯했다. 아내는 의외로 의연했다. 이게 엄마의 힘인가.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옛날 노래방에서 5분씩, 10분씩 추가로 시간을 받아서 노는 시간을 늘리던 때처럼, 조금만 더’ 권법을 시전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귀가 시간을 늦췄다. 자비로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최대한 소윤이와 시윤이의 요구를 수용하며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셨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가시고 나서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당장 필요한 식재료만 사는 수준의 간단한 장 보기와 소윤이, 시윤이에게 바깥바람 쐬어주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장을 보면서 소윤이에게 많이 의지했다.
“소윤아. 우리가 평소에 먹는 게 참김이야 돌김이야?”
“봐봐여. 이건가?”
“그래? 이거 맞아?”
“잘 모르겠어여. 이거 같기도 하고 이거 같기도 하고”
“그래? 기억 안 나?”
“헷갈려여”
왠지 소윤이는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장 보기를 마치고 나서는 문구점에 갔다.
“아빠. 여기는 왜 왔어여? 뭐 사려구여?”
“아, 너네 붓 한 개씩 골라”
“붓이여? 갑자기 왜여?”
“그냥. 너네 작은 붓 하나밖에 없어서 불편하잖아”
각각 쓸 작은 붓 두 개와 함께 쓸 큰 붓 하나를 샀다
“소윤아, 시윤아. 너네가 서윤이 병원에 있는 동안 소윤이랑 시윤이가 잘 기다려 주고 서윤이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그래서 아빠가 고맙고 기특해서 사 주는 선물이야”
소윤이와 시윤이를 지인의 집에 맡겼을 때 거기서 무슨 냉동 핫도그를 먹었는데 소윤이가 그게 엄청 맛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나중에 그걸 사서 꼭 한 번 먹자고 했다. 생각난 김에 그걸 사러 갔다. 소윤이에 말에 의하면 이마트 에브리데이나 트레이더스에서 판다고 했다. 동네에 있는 이마트 에브리데이에 가서 냉동식품 냉장고를 찬찬히 살폈는데 소윤이가 말하는 그 브랜드의 핫도그는 없었다.
“아, 소윤아. 없나 보다. 나중에 다른 데서 사야겠다”
“그러자여. 나중에 트레이더스 가 보자여”
집으로 가려다가 발걸음을 돌려서 꽈배기 가게로 갔다. 소윤이는 치즈볼, 시윤이는 크림치즈 팥도넛을 골랐다. 집으로 오는 길에 조금씩 떼어서 아이들 입에 넣어줬다. 놀이터에서 그네도 탔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이 없는 동안 잘 지내서 고마워”
서윤이에게 미안했던 만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서윤이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뭔가 깊이 못 자는 느낌이었다. 자다가 작은 소리가 날 때마다 아내와 내가 들어가서 확인을 했다. 다행히 그때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많이 뒤척이고 자주 깼다. 아예 깨서 울 때는 아내가 들어가서 다시 재우기도 했다. 사실 그냥 둬도 알아서 다시 잠들었겠지만 나의 불안 덕분에 아내가 수고를 했다.
“여보. 서윤이 곤히 잘 자네”
“엄마가 없어서 불안했나”
며칠 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게 영 불안했던 건지 아니면 불편했던 입원 생활의 여독이 남은 건지. 모든 게 정상궤도로 회귀하는 양상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지우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희석되는 게 느껴졌는데 그렇게 안심하다가 뭔가 또 큰일이 나면 후회할까 봐 억지로 불안을 놓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서윤이는 서윤이대로 나는 나대로 후유증을 겪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