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 4

22.01.07(금)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고 했는데 아침을 차려 주는 건 한참 걸렸다. 지난 며칠 간의 피로가 쌓였는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냉장고에 있던 두부와 멸치볶음으로 아주 간단한 아침밥을 차렸다.


서윤이는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밥도 엄청 잘 먹었다고 했다. 마치 어제 아침처럼 쉬지 않고 부지런히 먹었다고 했다. 밥 먹을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그 뒤에는 졸렸는지 짜증을 많이 냈다고 했다. 링거를 뽑아서 자유로워진 덕분에 아기띠로 안는 게 가능해졌다. 아내는 서윤이를 아기띠로 안고 달랬다. 서윤이는 좋았겠지만 아내는 힘들었을 거다. 차라리 유모차에 태워서 걷는 게 낫지. 아내는 뭐가 더 힘들고 덜 힘든지 따지지 않았을 거다. 서윤이가 조금이라도 편한 게 중요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을 먹고 나더니 뜬금없이 물감 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뭔가 번잡스러워지고 치울 것도 많을 거라는 생각에 ‘나중에’ 하자고 하려다가 마음을 바꾸고 물감을 꺼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정말 즐겁게 물감으로 이것저것 그렸다. 서윤이와 엄마에게 줄 거라며 그림 편지도 썼다. 작은 붓을 서로 쓰겠다고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이번 주말에 기회가 되면 붓을 하나씩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서윤이의 MRI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서윤이의 상태도 입원하기 전과 비슷하게 좋아졌기 때문에 오후에 퇴원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이 오후에 퇴원한대”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퇴원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미리 준비시켜 놨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 바로 나갈 수 있도록. 바로 택시를 불러서 병원으로 갔다. 가는 동안 약간의 설렘과 불안이 묘하게 섞여서 느껴졌다.


아내는 이미 모든 퇴원 수속을 다 마치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아내와 서윤이가 있는 층으로 내려가는데 아내와 서윤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소윤아, 시윤아. 저기 엄마랑 서윤이 보인다”

“어디여? 어디? 어디?”

“저기. 서윤이 안 보여? 꼭 키위 같다. 키위”

“아, 진짜”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를 아주 반갑게 안아줬다. 언니와 오빠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마 엄청 반가웠을 거다. 아내 옆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다. 오늘 퇴원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혹시라도 더 길어질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그게 다 필요 없는 짐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 함께 차에 탔다. 이게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인가 싶었다. 혹시 모르니 아내는 서윤이 옆에 앉았다. 내가 그러라고 했다. 서윤이의 경련을 겪고 나서 이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 불안이었다. 엄청 불안했다. 불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지만 불안했다.


집에 와서도 서윤이의 작은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고 내내 불안했다. 얇은 유리처럼 변한 속이 그대로인 듯했다. 서윤이도 조금 다르긴 했다. 말하거나 움직이는 건 이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무척 피곤해 했다. 자주 손을 빨았고 자주 누웠다. 짜증도 엄청 많이 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그랬다. 그런 서윤이를 보며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고


‘괜찮은가. 또 나빠지지는 않겠지. 너무 많이 울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서윤이 낮잠 잘 때는 같이 들어가서 잠깐 누웠다. 피곤하기도 했고 서윤이 옆에 누워 있고 싶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도 전했다. 새삼 감사했다. 여러 사람이 전하는 조언이나 위로가 모두 아내와 나의 마음을 단단히 지켜줬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아내와 그런 이야기를 한참 했다.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이런 시간을 겪게 하신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 감사하게도 아내도 나도 경련의 시간을 통해 정말 큰 사랑을 받았고 느꼈다.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다 함께 거실에 모였다. 기도를 했다. 서윤이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는 기도와 앞으로 또 경련을 하지 않게 지켜 달라는 기도를 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서윤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서윤이가 아니라 소윤이나 시윤이, 그리고 아내였어도 마찬가지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서윤이를 재우고 나오니 불안은 더 심해졌다. 방 안에서 작은 소리가 날 때마다 아내가 들어가서 확인했다. 아내는 나만큼 불안하지는 않았는데 내 덕분에 자주 들어갔다. 만약에 ‘우리도 모르게 또 경련을 하다가 끝내고 자는 거면, 우리가 어떻게 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CCTV를 설치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아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도 너무 과한 반응이기도 한 것 같아서.


“여보.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다”


아내 말처럼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때도 마치 꿈꾸는 것처럼 멍했는데. 그 시간이 어쨌든 지나고 다시 이렇게 한 집에 모여서 자는 것도 꿈같았다. 서윤이가 저렇게 멀쩡해진 것도 꿈같았고.


서윤이는 자면서도 자주 깨서 울고 짜증을 냈다. 내일이 주말이었지만 주말을 맞이하는 설렘은 거의 없었고 주말이라 서윤이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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