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 3

22.01.06(목)

by 어깨아빠

자다가 서윤이가 뒤척이는 걸 느끼고 눈을 번쩍 떠서 서윤이를 살폈다. 서윤이가 잠에서 깬 건 아니었는데 서윤이 입 주변 시트가 젖어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젖은 건 분명했다.


‘어? 서윤이 토한 건가?’


서윤이와 병원에 온 이후로, 경련을 한 이후로 두 가지에 관한 불안이 생겼다. 하나는 경련 그 자체였고 또 하나는 구토였다. 서윤이가 너무 많이 토하고 못 먹어서 결국 이렇게 됐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시트가 젖은 걸 발견하자마자 휴대폰 불빛으로 주변을 밝혔다. 시트가 젖기만 하고 음식물이나 내용물이 보이지는 않은 걸 보니 다행히 살짝 넘긴 정도인 듯했다. 다시 자려고 하는데 서윤이가 또 뒤척였다. 뭔가 이상했다. 서윤이가 누워 있던 다른 자리도 젖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윤이 바지도 젖어 있었다. 다시 불을 비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토가 아니었다. 똥을 쌌는데 그게 샌 거였다. 똥은 반가웠다. 몸이 안 좋을 때는 일단 잘 먹고 잘 싸기만 해도 낫는다고 했다.


“아, 저기 선생님. 애기가 똥을 쌌는데요 팬티 기저귀라 링거를 잠깐 분리해 주셔야 할 거 같아요”

“아, 네. 빼 드릴게요”

“아, 그리고 기저귀 밖으로 새서 시트에도 좀 묻었는데 갈아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일단 시트 하나 드릴 테니까 그거를 위에 까시고 교체는 내일 해 드리면 안 될까요?”

“아,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와 서윤이의 링거를 분리해 주셨다. 병원에 온 뒤로 서윤이는 기저귀를 갈 때마다 엄청나게 짜증을 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윤이의 바지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서윤이가 기저귀를 피해 이리저리 뒹굴 때마다 깨끗했던 부분에도 도장이 찍히듯, 자국이 남았다.


“아, 아버님. 그냥 시트 갈아드릴게요. 잠시만요”


난 겨우겨우 서윤이를 설득하고 달래서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혔다. 서윤이가 똥을 싸면 채변을 하라고 미리 받아 놓은 통에 서윤이의 변을 담았다. 서윤이의 똥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오셔서 침대의 시트도 갈아 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때가 새벽 1시쯤이었다.


‘아, 이제 나가서 걸어야 하는 건가’


하고 마음을 다졌는데 의외로 서윤이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서윤아. 잘 자”

“아빠. 달 다여어”

“그래. 서윤이 푹 자”

“네”


그러더니 금방 다시 잠들 것처럼 눈을 감았다. 서윤이는 그렇게 아침까지 쭉 잤다. 덕분에 나도 어제와는 다르게 아주 길게 잤다. 마음 편히 푹 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로비에 나가서 걷지 않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쌓였다. 어제 늦은 시간에 잠을 많이 자서 안 잘 줄 알았던 서윤이는, 검사받느라 애를 쓰고 약기운이 여전히 남아서 피곤했나 보다. 그렇게나 푹 잘 줄 몰랐다.


서윤이는 아침밥이 들어올 무렵에 깼다.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난 서윤이를 보는 순간 느꼈다.


‘어제와는 다르다. 좀 나아졌나 보다’


서윤이가 아직 첫마디를 내뱉기도 전이었는데 그렇게 느꼈다. 서윤이의 첫마디를 듣고는 완전히 확신했다.


“빠아. 빠아”

“서윤아. 밥 먹을까?”

“네에. 빠아아압”


놀랐다. 서윤이는 어른 밥그릇으로 한 그릇이 가득 찬 죽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반찬으로 나온 소갈비찜과 야채도 잘 먹었다. 입원하고 가장 반갑고 기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서윤이가 태어나고 가장 흥분하며 밥을 먹였던 것 같기도 하다. 서윤이는 정말 달랐다. 어제는 ‘느리게’ 효과를 건 것 같았지만, 오늘은 ‘정상배속’이었다. 대화도 다 되고 표정도 밝아지고 부기도 빠지고 장난도 많이 쳤다.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한데 왜 또 눈물은 그렇게 나오려고 하는지. 아내에게도 영상통화를 걸어서 서윤이를 보여줬다. 아내도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네. 어제랑은 또 다르네. 감사하다”


서윤이가 나아지고 기분이 좋아졌어도 서윤이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로비였다. 오늘도 하염없이 걸었다. 서윤이는 먼저 장난도 많이 걸고 혼잣말도 많이 했다. 담당 선생님께서 뇌파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고 혈액 검사도 정상이라고 하셨다. 서윤이 상태도 많이 좋아지고 했으니 MRI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고 또 경련을 하지 않으면 일단 내일은 퇴원을 해도 될 거라고 하셨다.


오늘은 아내가 오기로 했다. 아내와 교대를 하기로 했다. 사람의 앞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난 이틀처럼 힘든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서윤이도 엄마를 너무 많이 찾았다. 서윤이가 안쓰러워서라도 아내가 오긴 해야 했다. 예상대로라면 내일은 퇴원이니 아내에게도 많이 힘든 시간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암마 이따?”

“어, 서윤아. 엄마 이따 오실 거야”

“이따아?”

“응. 이따. 서윤이 엄마 보고 싶어?”

“우웅”


서윤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서윤이는 엄마만큼이나 딸기도 기다렸다.


“암마 이따? 따기?”

“어. 서윤아. 엄마가 이따 딸기 사 가지고 오신대”

“따기?”

“어. 서윤이 딸기 좋아하잖아. 얼른 먹고 싶지?”

“네에”


이런 대화를 계속 반복하면서 아내가 오기 전까지 계속 로비를 돌았다. 아, 서윤이는 점심도 잘 먹었다. 아침처럼 한 그릇을 다 비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 이상은 먹었다. 자기가 원하는 반찬을 바로바로 올려 주지 않으면 불같이 짜증을 내는 건 여전했다.


아내는 오후 3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서윤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엄마를 보자마자 아주 환하게 웃었다. 내 마음도 뭔가 편안해졌다. 서윤이도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엄마와 함께 있는 게 서윤이의 안정에는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국이라 두 명의 보호자가 함께 병실에 머무는 건 금지사항이었다. 서윤이는 워낙 어리니까 아주 잠시 허락받은 거였다. 아내에게 중요한 사항, 예를 들면 침대에서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해야 하는 조치라든가 주요 장소의 위치라든가 서윤이의 이동 경로와 짜증 요소 같은 걸 알려줬다.


“서윤아. 아빠 갈게. 오늘 엄마랑 잘 있다가 내일 건강하게 아빠 다시 만나자”

“아빠아. 안냐앙”

“서윤아. 엄마랑 잘 지내. 알았지?”

“네”

“아빠 갈게. 바이바이”


나 원 참. 그 힘든 병실과 로비에서 해방되는 건데 왜 그렇게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지. 그래 봐야 내일이면 다시 돌아오고 만날 텐데. 몇 년을 헤어지는 것처럼 슬퍼지려고 했다. 서윤이와 병원에 오고 나서 심장을 비롯한 그 주변이 다 얇은 유리로 변한 것 같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불안을 느꼈고, 무엇보다 수시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청승맞게.


“여보. 여보도 잘 챙겨 먹고. 서윤이 자면 여보도 무조건 쉬고”

“알았어 여보. 여보 조수석에 김밥 사 놨으니까 그거 먹어요. 알았죠?”

“어, 알았어. 내일 봐”


차에 앉으니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차는 정말 울기 좋은, 나만의 공간이자 세상이었다. 김밥 덕분에 참았다. 울면서 먹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청승맞았다. 아내가 사 놓은 김밥을 우걱우걱 입에 넣었다. 무슨 맛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먹었는지 모르겠다. 차로 10분 남짓한, 자주 다녔던 길인데 마치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있다 온 것처럼 어색하고 반가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병원에 오기 전에 같은 동에 사는,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선생님 집에 맡겼다. 거기도 딸과 아들이 있고 소윤이, 시윤이와 나이도 같다. 소윤이와 시윤이 입장에서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셈이었다. 바로 데리러 가면 소윤이와 시윤이도 너무 아쉬울 테니 조금 더 있다가 데리러 가기로 했다.


덕분에 집에는 나 혼자였다. 화요일 아침에 씻은 이후로 한 번도 못 씻었다. 심지어 양치조차 못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식욕도 없었고 커피욕(?)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씻고 싶은 욕구만 강했다. 집에 와서 바로 씻으러 들어갔어야 했는데 뭔가 긴장이 풀리면서 일단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켜서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봤다. 서윤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내는 얼마나 서윤이가 보고 싶었을지, 또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고 마음을 졸였을지 그때 느꼈다. 사진을 보다가 역시나 눈물을 흘렸고 이번에는 울음으로 발전했다. 서윤이가 경련을 하고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펑펑 울었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바보 같고 안일했던 스스로를 향한 원망의 마음도 다시 진해졌다. 서윤이에게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한참을 소리 내서 울었다.


그러고 나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기분으로 며칠 만에 샤워를 했다. 아주 개운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는데 단 게 생각났다. 집 이곳저곳에 숨은 단 과자와 초콜렛을 찾아서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올라갔는데, 저녁까지 먹여서 보내신다고 해서 다시 내려왔다.


서윤이는 나와 헤어지고 나서 바로 딸기를 먹고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도 있고 딸기도 먹고.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기저귀 갈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냈다고 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그렇게 사자후를 내뱉고 나서는 잠들었다고 했다. 입원하고 나서 잠투정이 심해지긴 했다.


아내가 서윤이 변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서윤이가 토하고 못 먹은 건 노로바이러스 때문인 게 분명해졌다. 그게 경련의 발단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담당 선생님과 신경과 의사인 지인은 그렇게 단정하지 않았다) 나의 자책과 회한은 멈추기 어려웠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노로바이러스는 워낙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1인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는 거다. 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병동도 많이 돌았는데 1인실을 지날 때마다


‘그래도 저긴 좀 편하겠네’


하는 생각을 했는데, 거기에 들어가게 됐다니. 서윤이와 아내는 저녁을 먹고 1인실로 옮겼다. 아내가 영상통화로 보여줬는데 호텔처럼 보였다.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윤이도 많이 나아지고 아내도 덜 힘들고. 물론 그래 봐야 병원이고, 아무리 초가삼간이어도 집보다 나을 리 만무하지만.


서윤이는 저녁도 잘 먹었다고 했다. 저녁 먹고 나서 드디어 링거도 뽑았다고 했다. 내가 다 속이 후련했다. 가뜩이나 이리저리 뒹굴면서 자는 녀석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점점 나아지는 서윤이를 보며 아내와 나는 무한한 감사를 나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꽤 늦게 집에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니 또 눈물이 나려고 했다. 반갑고 기특하고 대견하고. 그런 눈물이었다. 물론 꾹 참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다. 서윤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마음이 넉넉했다. 하자는 대로 보드게임을 다 하고 잘 준비를 했다.


다 씻고 자기 전에 셋이 거실에 모여 앉아서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어떤 기도를 하면 되냐면 아팠던 서윤이가 이렇게 잘 회복되고 좋아지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면 돼.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서윤이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경련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렇게 소리 내서 기도하면 돼. 알았지?”


펑펑 울면서 기도했다. 소윤이도 눈시울이 붉었다. 아내 말로는 소윤이도 기도할 때마다 울었다고 했다.


아내는 병원에서 서윤이가 입원하기 전에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아이폰이 만들어 준 서윤이 영상을 보면서 울었다고 했다. 아마 아내가 나에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내도 집에서 많이 울었을 것 같았다. 내가 오늘 혼자 집에 있어 보니 그 심정을 알겠다.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자는 게 이렇게나 든든하고 따뜻한 일이라는걸, 오늘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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