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1(화)
대구로 출장을 다녀왔다.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을 하게 됐다. 시간이 난 김에 소윤이 한의원에 가기로 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에 맞춰서 기차역으로 나왔다. 한의원이 그 근처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아빠를 만나는 걸 기뻐했다.
“아빠. 평소 같았으면 아직 사무실에 있을 시간 아니에여?”
“그렇지. 일찍 퇴근하니까 좋지?”
“아빠. 맨날 이 시간에 퇴근해여”
아내가 소윤이와 함께 진료를 받는 동안 난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기다렸다. 아침부터 아빠를 찾았다던 서윤이는 반갑게 날 맞아 주고 나에게도 잘 안겨 있었다. 소윤이도 그랬고 시윤이도 그랬고 서윤이도 똑같다. 아빠에게는 밀고 당기기를 아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소윤이는 비염 때문에 한약을 한 번 지어 먹였는데 꽤 좋아졌다. 물론 한약을 먹으면서 차가운 음식을 아예 끊은 것도 도움이 됐다. 한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맥주도 끓여 마셔라”
소윤이 덕분에 나도 생활 습관을 개선했다. 차가운 물을 안 먹게 됐다. 차가운 커피는 아직 포기 못했고 앞으로도 못하지 않을까 싶지만, 물은 바꿨다. 사랑하는 딸의 고생(?)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아내가 저녁을 밖에서 먹자고 했다.
“서윤이. 괜찮을까?”
“뭐가?”
“바깥 음식 먹여도?”
“괜찮을 거야”
집 근처로 와서 돈까스를 먹었다. 어디를 가도 코로나 백신 인증은 확인을 하지만 실제 가족 여부 확인은 면제받곤 한다. 가족이 아니라면 어떤 조합일지 상상이 안 되기도 하고 가족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닮기도 했고.
오늘도 역시나 시윤이가 끝까지 먹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배 좀 불렀어?”
라고 물어보는데 대체로 소윤이는
“네. 배 불러여”
라고 대답하고 더 안 먹어도 되냐고 물어도 괜찮다고 대답한다. 시윤이는
“아니여. 아직 배가 하나도 안 불러여”
라고 말할 때가 많은데 그게 꼭 다 장난은 아닌 듯하다. 그러고 나서 먹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정말 배가 안 부른 것처럼 열심히, 맛있게 먹는다. 한창 크는 시기가 온 게 아닌가 싶다. 서윤이도 마찬가지다. 퇴원하고 나서 먹는 양이 부쩍 늘었다. 배가 항상 빵빵하다. 아프고 나면 훌쩍 큰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나 보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어서 아내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울 준비를 했다. 목장 모임이 시작될 즈음에 아내와 아이들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한참 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서윤이 목소리였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조잘거렸다.
“치치야. 어딨니. 여깄다. 이러고 놀고 있음”
아내가 서윤이의 모습을 전해줬다.
“치치랑 계속 수다 떨어. ‘치치야 오빠꺼 엄마 줬어? 응. 나도 모르겠어’ 이런 별의별 말을 다 하고. ‘예수님 엄마가 크킄크킄’, ‘예수님 엄마가 여기를 꽝 해서 치치를 꼭 안아서 했어여. 치치야 아멘’ 이런 말도 하네. 안 자는데 안 밉고 사랑스러워”
물론 서윤이가 저렇게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아내와 나만 이해할 수 있다. 요즘 부쩍 말이 늘고 많이 한다. 문장 구사력이나 표현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수동적으로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대화를 이끌어 나갈 때도 있다. 이런 과정을 보는 게 세 번째지만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고, 놀랍다.
서윤이의 목소리는 꽤 한참 동안 들렸다. 결국 아내는 서윤이의 수다를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밝았다.
낮에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감동(?) 받았다고 했다.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가 잠든 엄마에게, 평소 같았으면 왜 이렇게 안 나오냐고 안달이 났을 녀석들이 더 있다가 나오라고 했다는 거다. 아이들이 나오라고 할 때까지 방에 있다가 나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했다. 물론 별 건 아니다.
소윤이는 귤로 ‘엄마’ 글씨를 만들고 편지를 썼고, 시윤이는 귤로 토끼를 만들고 편지를 썼고. 부모는 자녀의 결과를 보고 감동받지 않는다.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자녀들이 냈던 마음과 애쓴 과정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힘들고 피곤해 보이는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고민하고 궁리해서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를 만들고, 또 그걸 본 엄마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고. 엄마는 그런 자녀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마음을 헤아리며 웃고. 관계의 성숙은 이런 시간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아내가 매일 힘들고 고되게 치여도 버티는 건, 이런 시간과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큰일(?)을 겪고 난 직후라 그런지 아내도 나도 이런 소소한 일상에 새삼 더 진하게 감사를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