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썰매 너무 재밌죠, 대신 각오는 단단히

22.01.15(토)

by 어깨아빠

얼음 썰매를 향한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서두른다고 서들렀는데 역시나 마음만큼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건 어려웠다.


서윤이가 고민이었다. 아예 장모님과 장인어른에게 맡길까도 생각했는데 왠지 아쉬웠다. 서윤이도 재밌어하고 잘 놀 것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협조를 안 할지도 몰랐지만. 출발하기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일단 데리고 가 보고 정 안 되겠으면 장모님과 장인어른께 맡기기로 했다. 철저히 우리의 편의만 고려한 다소 뻔뻔한 계획이기는 했다.


아내와 나도 가 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지인이 ‘한적해서 놀기 좋은 곳’이라며 알려줘서 가는 거였다. 난 어렸을 때 동생과 얼음 썰매를 재밌게 탔던 기억이 있다(동생은 어떤지 모르겠네). 얼음 썰매의 재미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아내가 이런 곳이 있다며 얘기했을 때 애들만큼이나 내가 좋아했다. 다만 정말 힘들 거라는 각오도 단단히 했다. 나 혼자 놀아도 힘든데 세 녀석을 챙겨야 하고, 끝없이 근력을 사용해야 할 게 뻔했다.


날씨는 아주 딱이었다. 이번 주 내내 엄청 추워서 얼음이 단단히 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오늘은 놀기 딱 좋을 정도로 풀렸고. 어제 아내가 부지런히 마련한 스키 바지와 부츠를 챙겨서 썰매장으로 향했다. 서윤이는 차에서 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점점 들떴다.


논두렁 썰매장이었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었다.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적당히 많았다. 말이 썰매장이지 그야말로 논에 물 가두고 얼린 곳이었다. 관리하시는 아저씨(왠지 땅주인이신 것 같은)에게 썰매 대여 비용을 이체했다. 스케이트 날이 달린 얼음 썰매 두 대와 눈썰매장에서 타는 플라스틱 썰매 한 대를 빌렸다.


의욕은 내가 제일 넘쳤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며 아이들에게도 얼른 얼음 썰매의 속도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처음에는 고전했다. 내가 해도 꽤 힘이 필요한 일이었다. 양손에 꼬챙이를 쥐고 그걸 얼음에 박으며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게 아이들에게는 어려워 보이긴 했다. 그래도 둘 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해서 나중에는 어느 정도의 자유로움을 얻었다.


서윤이는 플라스틱 썰매에 태우고 끌어줬는데 서윤이 혼자 앉으면 뒤로 넘어가니까 꼭 아내가 같이 타야 했다. 덕분에 아내도 무노동 썰매의 혜택을 누렸다. 물론 처음에 잠깐이었다. 나중에는 아내도 나도 애들 끌어주고 놀아주느라 바빴다.


끈 매달아서 끌어주고, 내 무릎 위에 앉혀서 얼음 썰매 태워 주고, 썰매 연결해서 맨 앞에서 끌어 주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썰매를 타며 놀았다. 서윤이도 의외로 엄청 잘 놀았다. 하긴 서윤이야 편했지. 그야말로 완벽한 무노동 썰매였으니. 소윤이와 시윤이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부지런히 놀았다. 그러다 서윤이가 한계가 왔는지 자꾸 썰매에서 내려 얼음 위를 걷겠다고 하고 안아 달라고 했다.


“여보. 엄마, 아빠 오시라고 할까?”

“그럴까?”


그래도 한참 놀고 난 뒤였다. 서윤이 안 데리고 왔으면 서운했을 정도로 잘 놀았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오셔서 서윤이를 먼저 데리고 가셨고 소윤이와 시윤이하고는 더 놀았다. 잔뜩 기대하고 왔던 소윤이와 시윤이는 놀다 보니 흠뻑 빠졌는지 조금도 지루해 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해가 지니까 급격히 추워졌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조금만 더 놀고 가야겠다”


세 시간을 넘게 놀았다. 아내는 팔이 후들거렸고 나도 마치 헬스를 하고 난 뒤처럼 팔과 등이 부푼 느낌이었다.


“아빠. 내일도 오자여”

“아빠. 저는 몇 시간도 더 놀 수 있어여”


소윤이와 시윤이의 말은 장난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아내와 나도 정말 재밌었다. 대신 진짜 힘들었다. 나야 매주 축구를 하면서 비슷한 정도의 방전과 가쁜 호흡을 경험하지만 아내에게는 굉장히 오랜만인 일이었다. 아내는 자기 신체의 이상 증상(?)을 신기하게 얘기했다.


“여보. 나 손이 계속 떨리네?”


서윤이를 맡긴 김에 소윤이, 시윤이와 저녁도 먹고 카페도 들르기로 했다. 어쩌다 한 번씩 가는, 전혀 모르는 동네라 급히 식당을 검색했다.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먹기 좋은 청국장 집으로 정했다. 아내와 나는 청국장을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얀 두부를 시켰는데 청국장이 정말 기가 막혔다. 추위와 피로를 모두 녹이는 천상의 맛이었다. 맛있다는 말을 수십 번은 하면서 먹었다.


“아빠. 저는 순두부는 별로 맛이 없더라여”


소윤이는 하얀 두부가 별로였나 보다. 편식을 하지 않는 소윤이는 별로 입에 안 맞아도 감사히 잘 먹는다(실제로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르지만). 콩비지 전을 아주 잘 먹었다. 시윤이는 그냥 다 잘 먹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시윤이가 입이 훨씬 덜 까다로운 듯하다.


서윤이 한 명 없는 거였는데 정말 여유로웠다. 아내와 나만 느낀 게 아니라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렇게 말했다. 엄마와 아빠가 분주하지 않으니 소윤이와 시윤이도 여유로움을 느꼈나 보다.


“아빠. 서윤이가 없으니까 너무 어색해여”


정답이었다. 그래도 즐겨야 했다. 어색함이 무색하게 곧 만날 거였으니까.


밥을 먹고 나서는 카페에도 갔다. 소윤이가 먹고 싶어 한 스콘과 시윤이가 먹고 싶어 한 타르트를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타르트를 하나 더 주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식당에서 분명히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카페에서는 굶고 온 아이들처럼 잘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너무 배부르면 그만 먹어도 돼. 이런 건 몸에도 별로 안 좋은 건데”


라는 말을 아내가 하는 게 웃겨서 그냥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내도 스스로 민망했는지 나를 보며 먼저 웃었다.


“왜? 웃겨?”

“어?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타르트를 하나 더 주셔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친절하고 좋은 곳이었다. 커피도 맛있었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었지만 부디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기를 바랐다.


서윤이는 아내와 헤어질 때,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안냥”을 외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갔다고 했다. 가서도 단 한순간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와 다시 만났을 때 본체만체하지 않고 반겨준 게 고마웠다.


모두 엄청 피곤했다. ‘모두’에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와 아내도 포함됐다. 우리 가족의 일정이 얼마나 피곤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있다. 소윤이의 상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소윤이가 거의 잠들 뻔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진작에 곯아떨어졌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소윤이까지 그랬다는 건 정말 피곤했다는 거다.


시윤이는 집까지 올라오는 동안 잠깐 깨긴 했지만 거의 바로 다시 잠들었다. 서윤이는 아예 깨지 않았고. 소윤이도 오늘은 엄마 없이 들여보냈다. 아내는 오랜만에 재우는 시간을 피했지만 다 쓸모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거실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았다.


“아, 여보. 너무 놀고 싶은데 너무너무 졸려서 싫다”


아내는 억지로 조금 더 버티다가 결국 매우 이른 시간에 자러 들어갔다.


정말 재밌었다. 진짜 재밌었고 사진으로 다시 봐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고 아이들에게도 매우 좋은 추억이 될 게 분명했다. 정말 좋았다. 그런데 금방 또 엄두를 내지는 못 할 거 같다. 집에서 너무 가깝지 않은 곳이라 약간은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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