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스타트 해피 엔딩

22.01.26(수)

by 어깨아빠

서윤이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건 없고 지난 뇌파 검사의 결과를 듣는다고 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고는 했는데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났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마치 모든 진력을 쏟아내고 퇴근을 코앞에 둔 사람 같았다.


“여보. 목소리가 왜 그래?”

“그냥. 힘들어서”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닌 것 같았다. 거의 울먹이는 느낌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거다. 누가 더 심하다고 할 것도 없이 총체적으로 말을 잘 안 들었거나, 누군가 한 명이 특출나게(?) 아내의 마음을 뒤흔들었거나, 막 나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생리 현상을 호소했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벌어졌거나. 아무튼 아내의 목소리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아내는 예약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었다고 했다. 간단한 진료를 예상하고 갔는데 오늘따라 엄청 오래 기다렸다고 했다. 사람도 무척 많았고. 아이 셋을 데리고 어디든 가서 할 일을 해 내는 아내를 보면 약간 전사 같기도 하다. 생긴 건 전혀 그렇게 안 생겼는데 어쩜 그리 기개가 넘치는지.


진료를 마치고 나면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간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장모님께 맡기고 아내만 형님네 머물 거라고 했다. 형님네 오시던 산후관리사 분이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해서 당분간 못 오시게 되었고 오늘 하루는 아내가 가서 그 구멍을 메우겠다는 의도였다. 아이 셋을 키워낸 경력을 인정받았달까.


“여보. 나 완전 쉬고 왔어”


아내의 자평이었다. 조카가 너무 얌전히 잘 잤다고 했다. 또 세 아이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누워서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의외로 평화로웠다고 했다. 더군다나 아내는 ‘진짜 어린 아기’는 무조건 좋아한다. 사진을 보니 아내는 폼롤러에 누워서 뭉친 근육을 풀 정도의 여유까지 있었다.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을 카센터에서 만났다. 맡긴 차의 수리가 완료돼서 다시 차를 바꿔야 했다. 이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카시트를 우리 차로 옮겼다. 서윤이는 카시트에 앉아서 자고 있었는데, 너무 곤히 잤다.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서윤이가 앉아 있는 카시트를 통재로 들어서 옮겼다. 고작 해 봐야 스무 걸음 정도 되는, 바로 옆에 주차한 차로 옮기는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그런데도 힘들었다. ‘우왁’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그 노력 덕분에 서윤이의 수면 시간이 연장됐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좋았겠네. 할머니랑 계속 놀고”

“아, 권사님도 오셨어여. 권사님이랑 많이 놀았어여”

“아, 그래? 권사님도 오셨구나”


장모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권사님도 함께 계셨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권사님과 진짜 재밌게 놀고 온 느낌이었다. 장모님께서 주신 일용할 반찬으로 저녁까지 해결했다.


아내도 푹 쉬고 왔고, 아이들도 재밌게 놀고 왔고. 모두에게 유익한 하루였다. ‘우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창백했던 아내의 목소리로 시작했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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