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팔아서 책 사기

22.02.02(수)

by 어깨아빠

아이들은 장모님이 싸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너저분한 책장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올려 두고 쌓아 놓은 각종 잡동사니도 보였고,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인데 정리하지 않아서 꽂혀 있는 책도 보였다. 고민을 했다.


‘기왕 보인 김에 오늘 치워 버릴까’

‘한 번 시작하면 꽤 오래 걸릴 텐데 그냥 미룰까’


역시 이런 일은 깊은 고민을 하면 안 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충동적으로 일어나서 한 칸씩 정리를 시작했다. 읽긴 했지만 보관 가치가 없는 책과 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을 우선 책장에서 빼냈다. 아이들이 무질서하게 보관하던 각종 잡동사니도 과감하게 처분했다. 물론 아이들의 뜻을 묻기는 했지만 웬만하면 버리는 쪽으로 권했다. 역시 예상대로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일이 많아졌다.


“아빠. 책장은 깨끗해졌는데 바닥이 엄청 어지러워졌어여”


아이들의 말대로 바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각종 책과 쓰레기(?)가 가득했다. 그래도 버릴 게 대부분이라 오히려 치우는 건 금방이었다. 오전 시간을 거의 다 써서 책장을 정리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 꽂혀 있던 걸 정리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오후에는 정리한 책을 팔고 새 책도 사기 위해서 중고 서점에 가기로 했다. 책을 한곳에 모아서 담으니 꽤 무거웠다. 두 손으로 겨우겨우 들 정도였다. 책 말고도 버려야 할 쓰레기가 많았다. 온 가족이 나눠 들고 집에서 나왔다. 서윤이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 모두의 기대와 바람이 하나 있었다.


‘서윤이가 가는 동안 잠들겠지?’


이제 좀 컸다고 누가 나가면 꼭 자기도 가겠다고 하고, 외출할 때마다 잔뜩 신이 나서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서윤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미안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우리는 간절히 바랄 뿐 결정은 서윤이의 몫이었고. 서윤이는 모두의 평화를 위한 선택을 했다. 곤히 잠들었다. 덕분에 서점에서 머무는 동안 평화로웠고, 체류 시간도 길어졌다.


정리한 책이 아내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많은 값을 받았다. 새로 살 책의 비용을 충당할 정도가 됐다. 별 거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정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했다. 소윤이는 글을 읽으니까 아내와 나의 도움 없이 책을 찾아서 읽었다. 아직 책을 읽을 정도까지 도달하지 못한 시윤이는 아내나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난 책을 찾았고 아내가 시윤이 옆에서 시윤이를 도와줬는데, 마침 아내의 비염 증세가 엄청 심해졌다. 갑자기 최대치로 심해져서 시윤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말고 할 정신이 없었다.


나도 책을 찾느라 차분히 서서 시윤이에게 책을 읽어 주지는 못했다. 시윤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서 시윤이에게 건네 주기만 했다. 오전에 책을 정리하면서 시윤이가 좋아하지만 너무 많이 찢어진, 소방차가 나오는 책을 버렸다. 대신 자동차가 나오는 책을 하나 새로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윤이에게 건넨 책도 다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물론 다 사는 건 아니었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보라고 했다. 시윤이에게 주기 전에 기본적인 내용 검토(?)는 마친 상태여서 어떤 걸 골라도 상관은 없었다.


사실 소윤이를 위한 책을 사는 데 집중했다. 집에는 아무래도 그림책이 많았는데 대부분 소윤이가 읽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은 책이었다. 그림책에서 일반 책으로 넘어가는 과정 위에 선 소윤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준비해 놔야 했다. 그나마 처치홈스쿨에서 공유되는 추천도서 목록이 있어서 수월했다. 아예 책장 한 칸을 소윤이 칸으로 정했다.


“소윤아. 이 칸에 있는 건 어떤 책이든 꺼내서 읽어도 상관없어. 여기는 아빠가 소윤이가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 놓은 거니까 아무거나 읽어. 소윤이가 읽기에 어려운 책도 있기는 한데 한 번씩 훑어봐”


추천 도서 목록의 도움을 받아서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나름대로 골라서 꽂아놨다. 사실 소윤이가 아니라 아내나 내가 읽어야 좋을 책들이기도 했다. 서윤이는 서점에서 계속 자다가 다시 차에 탈 때 깼다. 다소 미안했다. 차에 타서 잠들었다가 깼더니 또 차에 태우다니.


“아빠아. 다 아떠여어?(다 왔어여?)”

“어, 서윤아. 다 왔는데 이제 가자”


다행히 서윤이가 아직은 이 정도의 상황 파악까지는 안 되나 보다. 서윤이는 기분 좋게 다시 카시트에 앉았다.


아이들에게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봤더니 소윤이는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에 먹었는데 또 먹고 싶냐고 했더니 ‘아빠가 해 준 오므라이스가 너무 맜있다’면서 또 먹고 싶다고 했다. 케첩이 90% 이상 맛에 공헌하는 오므라이스인데 ‘아빠의’라는 칭호를 붙여 주니 황송했다. 시윤이는 얼마 전에 먹어서 지겹다면서 그냥 밥을 먹겠다고 했다. 각자 취향을 존중해서 시윤이에게는 흰밥에 반찬을, 소윤이에게는 오므라이스를 줬다. 서윤이와 아내, 나도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소윤이는 먹으면서도 너무 맛있다는 말을 계속했다. 나중에 소윤이나 시윤이가 결혼했는데 갑자기 우리 집에 와 가지고


“아빠가 해 준 오므라이스 먹고 싶어서 왔어요”


라고 얘기하면,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어느덧 연휴가 끝났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난 소파에 앉았는데 엄청 졸았다. 졸면서 거의 1시간을 보냈다. 아내도 그때까지 나오지 못했고.


“여보.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게. 푹 쉬었는데”


매일 너무 늦게 자서 그런가. 별로 힘들 게 없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아무튼 연휴는 끝났지만 이틀만 보내면 또 주말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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