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러운 격리 생활

22.02.24(목)

by 어깨아빠

소윤이는 오늘도 밤새 잠을 설쳤다.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였고. 아내가 소윤이 옆에서 잤기 때문에(꼭 옆에 있지 않았더라도 아픈 딸은 엄마를 찾았을 테지만) 아내가 주로 소윤이의 수발을 들긴 했지만 나도 소리는 다 들었다. 아침에 깼는데 이게 자다 깬 건지 깨다 깼는지 분간이 안 됐다.


소윤이도 소윤이었지만 아내가 걱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연초부터 서윤이, 남편, 소윤이 순으로 간병 아닌 간병을 하는 셈이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집안 대청소를 했다고 했다. 환기도 시키고. 이불도 털고.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심정으로 임했다고 했다.


“나 머리도 좀 감고 힘내야지”


아내는 애써 힘을 내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아침에 이렇게 머리를 감았던 게 오늘의 신의 한 수였다고 했다. 머리를 감고 깨끗해진 자신을 보니 몸과 마음의 새로운 힘이 생겼고, 그걸로 오늘 하루를 살았다고 했다.


소윤이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격리에 돌입했다. 가장 큰 염려는 ‘서윤이에게 전염될 가능성’이었다. 아예 떼어 놓기는 어려우니 가능한 건 최대한 하기로 했다. 일단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기로 했다. 밥 먹을 때도 소윤이만 혼자 방에서 먹었다. 아내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너무너무 안쓰러웠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의젓한 소윤이를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아내는 자기도 밥을 잘 챙겨 먹고 있다면서 사진을 보냈다. 볶음밥 한 그릇과 김치. 그게 전부였다. ‘잘 챙겨 먹는다’는 표현을 붙이기에는 너무 단출했지만, 평소에는 거르는 게 태반이니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또 병원에 다녀왔다. 역시나 수두 판정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서윤이가 예방 접종을 맞지 않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시며 당장 격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럴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 드리니 일단 지금이라도 예방 주사를 맞으라고 하셨다. 이론상으로는 항체가 생기려면 시간이 필요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꾸러기 미소가 좀 살아났음”


이라면서 아내가 소윤이 사진을 보냈다. 수포도 많이 올라오고 가려움도 심해져서 힘들어 하지만 몸이 아파서 힘들고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듣기에도 목소리만 들어서는 아픈 줄 모를 정도였다. 대신 엄청 가렵다고 했다. 불과 얼마전까지 같은 증상으로 힘들었던만큼 소윤이의 괴로움을 깊이 공감했다.


엄청 힘들 거라고 예상했던 아내도 의외로 괜찮아 보였다. 물론 목소리와 분위기로만 감지한 것이기 때문에 아내의 철저한 연기에 속았을지도(?) 모른다. 밤에는 축구가 잡혀 있었다. 아내에게 끊임없이, 진심으로 ‘오늘은 정말 안 가는 게 기본 선택이다’라는 얘기를 했다. 물론 표리부동의 대명사였다. 아침에 나오면서 축구 가방은 챙겼다. 어쩌면 나의 축구 때문에 아내가 더 연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내는 ‘오늘은 오히려 정말 괜찮으니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다녀 와’라고 얘기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동생과 떨어져서 홀로 저녁을 먹는 소윤이 사진을 보니 더 그랬다.


축구를 마치고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지금 주차장”

“아, 사랑하는 막내가 아빠 보고 싶어서 깼나 봐요”

“아, 진짜?”

“어. 여보 거의 다 왔으면 얼굴 보고 재우려고”

“알았어. 얼른 올라갈게”


서윤이는 기분 좋게 나를 맞았다. 아내에게는 속상한(?) 일일지 모르지만 난 무척 반가웠다. 맥락없이 ‘아빠가 너무 좋다’고 말하는 세 살 막내 딸을 보는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축구 정도 돼야 비교가 가능하려나. 아무튼 서윤이 덕분에 아주 황홀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내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서윤이와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이 시간에 자고 싶지 않은데 들어가면 못 나올 거 같네?”


서윤이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할머니가 해 준 잡채’를 말했다고 했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장모님은 당장 잡채를 만들어서,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는 동안 집 앞에 놓고 가셨다. 뭐 그냥 한 5분 걸어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야말로 내리사랑이 집약된 잡채였다.


그 잡채를 내가 먼저 먹었다. 모두 자러 들어가고 고요한 거실에서 홀로 잡채를 후루룩거리며 주린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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