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또 컸네, 우리 첫째

22.02.25(금)

by 어깨아빠

아내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힘들다고 했다. 잠깐씩 통화할 때마다 서윤이의 우는소리가 들렸다. 그걸 기본으로 그 위에 시윤이의 짜증이나 우는 말투, 서윤이의 고집과 떼가 차곡차곡 쌓였다. 거기에 아픈 소윤이를 간병하는 일까지 더해지니 아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었을 거다. 다른 날도 항상 비슷하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유독 더 그랬을 거다.


소윤이의 가려움은 더 심해졌다. 소윤이가 버티는 게 신기했다. 엄청 괴로울 텐데 한마디 짜증도 안 내고 묵묵히(진짜 이런 느낌이다) 견디는 느낌이다. 새삼 소윤이가 얼마나 의젓한지 느꼈다. 어제 병원에 갔을 때도 ‘수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기가 먼저 ‘서윤이한테 옮기면 안 되니까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퇴근하고 만난 소윤이는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꼭 아픈 것처럼. 소윤이에게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소윤아. 몸이 힘들지는 않아? 간지럽기만 하고? 몸은 괜찮아?”


소윤이는 몸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대신 가려운 게 힘들다고 했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저녁은 소윤이와 둘이 먹었다. 아내와 시윤이, 서윤이는 식탁에서 먹고 나와 소윤이는 작은방에 상을 펴고 먹었다(소윤이는 계속 이렇게 혼자 먹었다). 매번 혼자 먹다가 마주 앉아서 이야기 나눌 사람도 있으니 좀 나았을 거다. 사실 내가 좋았다. 한 끼라도 혼자 먹지 않게 해 주는 게 좋았다. 소윤이는 평소에 비하면 확실히 기운도 없고 말수도 적었지만 아프거나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 했다. 소윤이와 저녁을 먹고 잠시 거실에서 시윤이, 서윤이와 놀다가 집에서 나왔다. 오늘따라 아이들과 대화하고 노는 게 재밌어서 늦게 나왔다. 집에서 나오면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여보. 오늘 커피 시킬 거야?”

“어? 왜? 생각 안 해 봤는데. 왜?”

“아, 그냥. 시켜 먹으라고”

“어? 왜?”

“그냥. 오늘 힘들었으니까”

“그럼 여보도 마실 거야?”

“어, 내 것도 시켜”


교회에 도착해서 연습을 하는데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아내가 커피를 주문했다는 알림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 아무도 없었다. 집의 상태는 아까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난 뒤의 모습 그대로였다. 식탁에는 식판과 숟가락, 젓가락이 그대로였고 싱크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저녁을 먹다가 사람만 빠진 듯한 풍경이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유일한 단서는 아내의 빈 커피컵이었는데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커피가 남았으면 ‘아, 애들 재우고 나와서 먹다가 누군가 깨서 다시 들어갔구나’라고 생각했을 거다. 남김없이 다 마셨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애들 재우기 전에 커피를 다 마시고 들어간 건가?’


평소 아내의 커피 마시는 성향으로 볼 때 이건 가능성이 낮았다.


‘애들 재우고 나와서 여유롭게 커피 다 마셨을 때쯤 누군가 깨서 들어간 건가?’


이게 차라리 가능성이 높긴 했는데, 그대로여도 너무 그대로인 집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내가 아무리 늘어져도(?) 어느 정도는 치우고 늘어지는 게 보통이다. 평소에 비하면 너무 그대로였다. 그야말로 저녁을 먹고 그대로 일어나서 씻고 자러 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별 의미가 없었다. 아내가 어떻게, 언제 들어갔든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지. 그때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매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단 커피를 마시며 좀 쉬었다고 했다. 그렇게 커피를 좀 마시고 나면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고 했다. 깰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렇게 이른 시간에 깨서 나올 줄은 몰랐을 거다. 아내는 급히 남은 커피를 흡입하고 서윤이와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잠든 건 아니라고 했다. 올케가 추천해 준 ‘금쪽같은 내 새끼’ 영상을 봤는데 그거 보다가 울었다고 했다. 남동생 세 명을 둔 10살 여자아이의 사연이었는데, 소윤이의 모습과 너무 많이 겹쳤다고 했다. 소윤이의 모습과 겹쳤다기보다는 첫째의 마음을 세세히 살펴 주지 못한 엄마로서의 자신을 새삼 발견했고, 그로부터 밀려오는 미안함과 속상함에 감정 이입이 됐다고 했다.


안 그래도 아내가 전해 주는 소윤이의 말과 행동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것들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요즘에는 ‘엄마와 기분 좋게 지내고 싶은데 동생들의 다툼이나 짜증으로 인해서 엄마의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게 너무 속상하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어떤 날은 그게 속상해서 울기도 했다. 어떻게든 동생들의 짜증을 막아 보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이제 소윤이는 그저 ‘어린아이’로 규정하는 것보다 ‘곧 사춘기가 올지도 모르는 아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정도로 컸다. 보육과 훈육의 시간도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왠지 이번에 아픈 게 다 낫고 나면, 또 훌쩍 클 것 같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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