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이들

22.03.01(화)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무슨 노래 나오는 장난감을 아침부터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그 노래에 시달렸다. 서윤이가 머리맡에 가지고 와서 길지도 않은 노래를,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해서 틀었다. 덕분에 일정 시간 이후로는 선잠을 잤다. 아내도 나와 비슷했을 거다. 아이들은 진작에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아내와 나는 비몽사몽이었다. 그럴 때 나를 일으키는 한마디가 있다.


“아빠. 배고파여”


아이들도 그걸 알고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건 아니겠지.


안방 문을 잠그고 나와서 아이들 아침을 만들었다. 방울토마토가 있길래 계란과 볶아서 밥에 얹어줬다. 늘 기본은 계란밥이다. 아내도 늦게까지 자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깨서 나왔다.


오늘도 특별히 어디 안 가고 집에 있었다. 윷놀이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서윤이의 방해가 덜 한 편이다. 덜 하다기보다는 서윤이를 적절히 참여시키는 요령을 터득했다. 윷놀이할 때는 내가 던져야 할 때 서윤이에게 던지게 하고, 보드게임할 때도 내가 내야 할 때 서윤이가 내게 하고 이런 식이다. 서윤이가 생각보다 규칙을 잘 따른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아주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된다.


“거 봐. 서윤이도 무조건 따돌리면 다 알고 기분이 나쁜데 이렇게 같이 하게 해 주니까 방해도 안 하잖아. 너희도 서윤이한테 무조건 하지 말고 같이 해 보려고 노력해 봐. 알았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아빠(나)가 있으니까 가능하다는 걸. 내가 없는 평일에는 서윤이가 이렇게 협조적이지 않을 거다.


서윤이는 신나게 놀고 나와 함께 낮잠을 자러 들어갔다. 오늘도 눕자마자 엄마가 보고 싶다는 소리를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와 사랑의 밀담을 나누며 기분 좋게 잠들었다.


“서윤아. 서윤이 좋아”

“나두우 아빠 두아”

“얼만큼?”

“이마아아큼 두아여어”

“누구를?”

“아빠을”

“서윤아. 사랑해”

“아빠아. 더두 다양해여어”

“그래. 서윤이 잘 자”

“아빠두 달 다여어”


아내는 오늘도 한숨 자고 나오라고 했지만 바로 나왔다. 점심은 배달을 시켰다. 시윤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을 시켰다. 역시나 정말 잘 먹었다. 시윤이가 탕수육 먹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굉장히 유쾌하게 잘 먹는다. 그동안 목이 아파서 밥을 잘 못 먹던 소윤이도 오늘은 꽤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잠시 밖에 나갔다. 자연드림에 갔다가 카페에 들렀다가 빵집에 들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로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우니 카페에 잠시라도 머무르자고 했다. 아내와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카페는 서윤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집 근처에 돌아오니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것 또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놀이터는 서윤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너무’ 가고 싶다고 했지만 아내와 나는 ‘서윤이와 놀이터에 가서 고생할 생각’만으로도 몸이 피곤해졌다. 대신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평소처럼 상가 주변을 걷는 게 아니라 산책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서윤이는 처음에 아주 잠깐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유모차에서 내려온 뒤에는 내가 서윤이와 함께 있었다. 산책로니까 특별히 위험한 게 없었다.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서윤이의 걸음과 호기심을 존중해 가며 천천히 걸었다. 발에 밟히는 젖은 낙엽, 손에 잡히는 나뭇가지, 마주 오는 강아지. 이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는지 전진하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서윤이에게 그렇게 완전한 자유를 주고 걷게 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서윤이와 나름의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걸으면 2시간을 걸어도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많이 걸었다. 한 시간 넘게. ‘이 녀석들을 자연과 더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렇게 행동할 용기를 내지 못할 거라는 스스로를 향한 체념도 동시에 느껴졌다. 내 기준에는 ‘아직 얼마 안 걸었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소윤이를 보며, 더더욱 도시의 아이들로 자라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다.


소윤이는 자기 용돈을 털어 엄마에게 마카롱을 사 주겠다고 했다. 소윤이가 얼마 전에


“아빠. 제가 용돈을 받고 나서 저를 위해서 뭘 산 적은 한 번도 없더라여”


라고 말했었다.


“그러게. 소윤아. 소윤이 사고 싶은 것도 좀 사”


라고 얘기했고, 소윤이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소윤이는 또 ‘선물’을 샀다.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고 하길래 일단 내가 대신 계산을 했다. 집에 와서 소윤이가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짜리 두 개, 백 원짜리 두 개를 나에게 건넸다.


“아빠. 2,200원 맞져?”

“소윤아. 그냥 아빠가 사는 걸로 할게. 이거 소윤이 써”

“아, 아니에여. 받아여”


소윤이에게 진정한 선물은 ‘온전히 자기 돈만 써서 사준 물건’이다. 그게 소윤이의 기쁨이고. 저녁은 아내가 간단히(?) 떡만둣국을 끓였다. 애들만 먹었다. 산책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아이들 재우는 시간도 늦어졌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나만 참여하는 거라 아내가 아이들을 씻겼다. 샤워를 시켜줬다. 날이 덥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자주 안 하게 된다. 자주 안 하는 수준을 넘어 너무 오래 안 해 줘서 미안해질 때도 많고. 아내의 표현처럼


“내 속이 다 후련하다”


싶었다.


아이들이 막 누우려고 할 때 모임이 끝났다.


난 점심때 많이 먹어서 저녁때도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다. 아내는 점심에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는 배가 고프다며 여기저기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냉동실을 열어 보고는, 부력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외쳤다.


“아, 피자가 있었구나”


아내는 피자 한 조각을 데워서 먹었다. 한 조각을 맛있게 먹은 아내는 다시 냉장고를 열고 뭔가를 꺼냈다. 요거트였다.


“몸에 안 좋은 거 먹었으니까 몸에 좋은 것도 먹어야지”


기적의 논리였다.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러고 나서 자러 들어가기 전에 나와 함께 종합 비타민을 한 알씩 먹었다.


몸에 안 좋은 거 한 개, 몸에 좋은 거 두 개 먹었으니까 몸이 좋아졌을 거야,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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