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3(목)
아내가 아침부터 모양새가 아주 예쁜 솥밥 사진을 보냈다. 밤과 완두콩이 수북하게 덮인 사진이었다. 아내의 수고와 고생을 격려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의 음식이라고 해도 엄청 보기가 좋고 맛도 좋아 보였다. 아내의 솥밥에 극찬을 보낸 지 얼마 안 됐을 때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진이 하나 또 왔다. 식탁 의자에 엎어진 밥그릇과 그 주변에 처참하게 흩어진 밥알의 모습이었다.
“열받네 강서윤^^ 의도를 가지고 내던졌어. 내가 겨우 막아서 바닥으로 안 떨어짐”
서윤이는 요즘 이런 시기다. '의도'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말과 행동이 많아졌다. 그게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의도가 느껴지면 반응하는 감정의 폭도 커지기 마련이다. 좋은 의도에는 좋은 감정이, 나쁜 의도에는 나쁜 감정이. 나쁜 의도를 가진 나쁜 말과 행동은 적절한 훈육으로 교정하는 게 맞지만, 서윤이는 아직 애매하다. 의사소통이 되긴 하지만 마치 원어민과 유학 새내기 사이의 의사소통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막내 프리미엄'까지 더해져서 바다 같은 자비로움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아내는 나에게 ‘이제 훈육의 때가 도래했으니 얼른 시작하라’고 종용하지만, 아주 위험하거나 인생의 근본을 흔들만한 비행(?)이 아닌 이상 신과 같은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있다. 아니, 베풀어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얼마없는 훈육의 시간에도 타고난 애교와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터질 때도 많고.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 곰팡이 제거하느라 진을 뺐다. 요즘 아내의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유발하는 게 곰팡이다. 결로가 거듭되면서 베란다 구석진 곳은 물론이고 실내까지 파고든 곰팡이를 볼 때마다 아내의 깊은 짜증이 느껴졌다. 특히 거실과 안방의 커튼 밑부분에도 곰팡이가 핀 걸 보고 나서는 아내도 평정심이 무너졌다. 이번 주말에 집에 손님이 오기로 한 데다가 돌이 안 된 아기도 있어서 아내의 묵은 짜증은 폭발했다. 아내는 곰팡이 제거제를 주문했고, 거실 벽 한쪽 구석에 핀 곰팡이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눈에 보이는 건 없앴다).
커튼에 핀 곰팡이는 그저 뿌리고 닦아내서 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커튼 전체를 빨다시피 했다. 아내는 제거제를 뿌리고 물에 담가서 빠는 순간 직감했다고 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아내는 한참 동안 커튼을 빨았다. 온 집안에 락스 냄새가 가득할 정도였다. 아내는 빨래를 다 하고 나서는 그걸 건조대에 걸어서 말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주름도 안 가고 줄지도 않을 거라면서. 말렸다. 주름이 가고 줄어들어도 아깝지 않은 커튼에 굳이 그렇게 품을 들일 필요가 없어 보였다.
“여보. 그냥 건조기 돌려. 뭐 어때”
이미 빠느라 지칠 대로 지친 아내도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아내는 자려고 안방에 들어갔을 때 나에게 물었다.
“여보. 확실히 냄새가 좀 없어진 것 같지 않아?”
“그런가?”
“아니야, 확실해. 확실히 줄었어. 너무 뿌듯하다”
청소에 육아만큼 진심인 아내에게, 청소를 하고 나서 느껴지는 변화는 아이들의 성장과 비슷한 기쁨을 주는 듯하다. 덕분에 내가 혜택을 누리고 있다.